‘뽀샵’이라는 단어는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이 단어는 사진을 수정하는 행위 그 자체를 말하는 하나의 보통명사화가 되었다. 이 단어의 유래는 어도비라는 회사의 포토샵(Photoshop)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왔는데, 해당 프로그램은 사진 보정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여 자연스럽게 생긴 단어다. 그리고 어도비는 이를 더욱 확장하여 사진 보정에서 영상을 다루는 광고, 영화의 특수효과까지 분야를 넓히고 창작의 기준점이 되었다. 그들은 창작의 제국을 세웠고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제국을 세웠지만 AI의 등장으로 풍파를 한번 겪고, ‘파이어플라이’라는 회사의 운명을 건 역작을 발표해서 잠시 반등하였지만, 결국엔 제 2의 코닥(Kodak, 필름과 아날로그 카메라를 상징했던 기업)이 되어 가고 있다.
[포토샵은 하나의 도구 이상의 존재였으며,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스펙이었다.]
창작의 동반자 어도비
AI가 등장하자 수십 년 전문가의 손끝에서 완성되던 아티스트의 자존심 포토샵은 이제 ‘딸깍’ 한 번이면 끝나는 대중의 장난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도비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수억 명의 창작자가 구독료를 내고 사용하고 있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투자자들은 결국엔 등을 돌렸고 주가는 반토막이 났다. 포토샵 제국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고 어도비는 어느새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몰락인가 부활인가, 그리고 이 싸움은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의 미래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포토샵으로 사진을 고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디자인을 했다. 프리미어 프로는 유튜버와 영화 제작자들의 필수품이었고, 대체가 불가능한 바이블 같은 것이었다. 이것을 잘 다루는 사람들은 프로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공인된 자격증이 존재했는데, 포토샵 자격증, 프리미어 자격증 등 이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것 자체가 스펙이었다. 이런 힘 덕분에 어도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학교에서 배우고, 회사에서 요구하고,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혔다.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어도비라는 회사가 하나의 기준점이자 표준이 될 수 있게 만든 수많은 프로그램]
표준의 제국 어도비
대중은 점점 새로운 도구를 찾기 시작했고, 이 도구들은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게 값싸고 빠른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 변화를 몰고 온 것은 AI다. 어도비 제국은 여전히 건재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균열이 번지고 있었다. 90년대 초반, 디지털 카메라가 막 보급되던 시기,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현상소에 맡겨야만 결과물을 볼 수 있었지만 포토샵이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이 소프트웨어는 단순히 밝기를 조절하는 수준을 넘어 피부를 매끈하게 만들고 배경을 아예 바꿔치기 할 수도 있었다. 흑백 사진을 컬러로 복원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야말로 현실을 새로 쓰는 도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사진은 더 이상 있는 그대로를 담는 매체가 아니게 되었다. 정치인들의 선거 포스터가 포토샵을 거쳤고. 잡지 표지 속 모델은 실제보다 더 완벽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시장이 단숨에 바뀐 것이다. 사진작가, 디자이너, 광고업계는 앞다투어 포토샵을 도입하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렸고 포토샵은 창작과 표현의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포토샵은 진실보다 강력한 도구라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이 혁명은 어도비를 단숨에 업계 중심에 올려놓게 되었고 창작 시장의 기준은 바뀌었다. 어떤 카메라를 쓰느냐보다 포토샵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들이 만든 표준은 이것만이 아니다. 문서관리 분야에서도
어도비의 흔적은 선명했는데 ‘PDF’는 단순한 파일 형식을 넘어 전 세계에 표준이 되었다. PDF는 어느 컴퓨터에서나 똑같이 볼 수 있는 다기능 문서 포멧 형식인데, 이것을 어찌나 편하게 만들었는지 정부보고서, 연구논문, 기업계약서까지 모두 PDF로 공유되고 또 다른 어도비 제국의 표준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결국 어도비의 제품을 배우지 않고는 전문가로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포토샵을 모르면 디자이너로 불릴 수 없었고, 프리미어를 다루지 못하면 영상 편집자로 서기 힘들었다. 어도비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기업이 아니라, 창작자와 산업 전체를 통제하는 플랫폼으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AI는 창작 분야를 가장 먼저 정복했다.
하지만 곧 상황이 달라지게 되는데 2022년에 등장한 생성형 AI는 단순한 보정을 넘어 사용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짧은 문장을 입력하면몇 초 만에 존재하지 않던 그림이 화면에 나타났고 실존하지 않는 인물의 사진, 상상 속 도시 풍경, 심지어 고흐나 피카소의 화풍까지 흉내 낼 수 있다. 이 기술은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었다. 전문가들이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은 노하우와 수많은 도구의 조합이 AI 앞에서는 버튼 하나로 구현된 것이다. 포토샵에서 인물 합성 하나를 하려면 레이어를 쌓고 마스크를 씌우고 세밀하게 다듬는 몇 시간의 과정이 필요했지만 AI는 몇 초 만에 자연스럽게 작업을 끝냈다.
광고업계는 시안 작업에 AI를 활용하기 시작했고, 디자이너를 거치지 않고도 고객에게 시각 자료를 바로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과거라면 전문가의 손길이 필수였던 영역이 그냥 사라져버린 것이다. 포토샵은 더 이상 전문가만의 무기가 아니었고 AI가 창작의 문턱을 허물어버렸다. 전문성을 무기로 삼아왔던 어도비의 제국은 균열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학습 곡선의 차이도 컸는데, 포토샵을 능숙하게 다루려면 몇 달에서 몇 년의 연습 시간이 필요하다. 수많은 단축키, 레이어 개념, 보정 기술을 익혀야 했지만 AI는 글 몇 줄을 입력하거나 버튼을 클릭하는 것으로 끝. 전문가가 수십 번의 시도를 거쳐야 얻을 수 있던 결과가 비전문가의 손에서도 단숨에 나오게 되니 누가 어도비의 프로그램을 찾겠는가.
AI와 공생을 통한 생존을 선택한 어도비
어도비는 위기 속에서 23년 생성형 AI 파이어플라이를 공개한다. 포토샵에서 텍스트 입력만으로 이미지를 수정하거나 영상 속 특정 장면을 자동으로 보정하는 기능을 선보였다. AI 시대에 발맞춘 발 빠른 대응에 발표는 성공적이었고,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그들이 혁신으로 내세운 모든 새로운 기능들을 며칠 뒤 AI가 구현하였다. 문제는 기능의 범위와 제약이었는데, 차별점으로 둔 저작권 안전성을 강조하며 학습 데이터를 제한적으로 사용했는데 이 덕분에 결과물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다른 AI보다 떨어지는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법적 리스크를 줄이려는 선택이 오히려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 셈이다. 파이어플라이는 여러모로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AI 시대에 뒤처진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되레 강화하게 되었다.
제 2의 코닥이 될 것인가?
AI가 가져온 거대한 변화를 어도비가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 아니면 쇠퇴의 길을 걸어 AI 에게 당한 거대한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남을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AI는 단순히 새로운 도구가 아니고 창작의 개념 자체를 바꾸고 있다. 전문가의 기술로만 가능했던 작업이 모두의 손에서도 이루어지고 수십 년간 쌓인 경험과 훈련이 더 이상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고 있다. 이 변화는 어도비의 위기일 뿐 아니라 창작이라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기업의 흥망이 아니다. 전문성과 창의성, 그리고 인간의 역할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대한 어찌 보면 슬픈 이야기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앞으로의 창작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일지 아니면 기술이 주도하는 새로운 표준으로 바뀌게 될지, 미래가 문득 궁금해진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과거의 영광만을 남긴 코닥, 어도비의 미래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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