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뒤흔든 보고서, '2028 글로벌 지능 위기'

2026222일 일요일 밤, 미국의 한 금융 리서치 회사가 서브스택(Substack)이라는 구독 플랫폼에 긴 글을 하나 올렸다. A4 용지 약 20장 분량의 이 문서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았다. '2028 글로벌 지능 위기(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 저자는 시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의 설립자 제임스 반 힐렌과 알랍 샤. 보고서는 삽시간에 수백만 명에게 퍼졌고, 다음 날인 월요일 뉴욕 증시는 다우존스 지수가 80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글 한 편이 세계 금융 시장을 흔든 것이다. 그것도 예측이나 분석이 아니라, '만약 최악의 일이 벌어진다면'이라는 가상 시나리오 하나가 그랬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일까?

 

[2028 글로벌 지능 위기 보고서]

 

 

이 보고서가 독특한 것은 형식 때문이다. 저자들은 20286월의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며 쓴 '미래의 회고록' 형태를 택했다. 마치 2028년에 이미 위기가 닥친 것처럼 그때의 경제 보고서를 지금 쓴 것처럼 꾸몄다. 저자들은 본문 첫머리에 "이것은 예측이 아닌 시나리오"라고 명시했다. 가장 나쁜 경우를 가정해 경고를 던지는 일종의 '최악의 시나리오' 사고 실험이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어 독자들은 예측처럼 받아들였다.

 

 

 

보고서의 핵심은 마찰이라는 개념이다. 저자들은 수백 년 동안 인간의 경제는 '복잡한 일을 처리하는 능력의 희소성' 위에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법률 문서를 검토하고, 세금 신고를 계산하고, 투자 분석을 하고, 소프트웨어를 코딩하는 능력, '복잡함을 헤쳐나가는 인간의 지능'은 귀했기 때문에 높은 보수를 받았다. 그런데 AI가 이 '마찰'을 사실상 0으로 만들어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것이 보고서가 던지는 핵심 질문이다. 우리가 받아온 월급, 쌓아온 경력, 누려온 전문직의 프리미엄이 모두 이 '마찰'에 근거하고 있었다면, 마찰이 사라지는 순간 그 모든 것의 가치도 함께 무너진다는 것이다.

 

[당신은 AI로 대체할 수 있는 인력에 속하지 않은가?]

 

저자들은 이를 '지능 대체 나선(Intelligence Displacement Spiral)'이라고 불렀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기업들은 합리적으로 인력을 줄인다. 실직한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은 소비를 줄인다. 소비가 줄면 기업 매출이 떨어지고, 기업은 또 비용을 줄이기 위해 AI를 더 도입한다. 이 악순환이 걷잡을 수 없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브레이크 없이 아래로만 향하는 경제의 나선형 하강, 그것이 보고서가 그리는 핵심 공포다.

 

 

보고서가 그리는 2년간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202610, AI 붐에 힘입어 S&P 500 지수가 8,000포인트, 나스닥이 3만 포인트를 돌파하며 역사적 고점을 찍는다. 시장은 흥분 상태다. 그러나 같은 시기, 기업들은 AI 에이전트를 대거 도입하며 화이트칼라 인력 해고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여행 예약 플랫폼, 세금 신고 대행 서비스, 간단한 법률 업무 같은 '정보 중개' 산업이다. 이어서 구독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는다. 기업들이 비싼 소프트웨어 구독료를 내는 대신 AI 에이전트로 동일한 기능을 자체 구축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비자·마스터카드 같은 결제 회사들도 AI가 수수료가 비싼 기존 결제 시스템을 우회하면서 타격을 입는다.

 

그 다음은 충격적인 반전이다. 이전 기술 혁명과 달리, 이번에는 고학력·고소득자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변호사, 회계사, 금융 전문가,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AI가 가장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직종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는 수 없이 저임금인 긱 이코노미(배달, 대리운전 등) 일자리로 이동한다. 20286, 실업률은 10.2%를 찍고, S&P 500은 고점 대비 38% 폭락한다.

 

[미래의 인력시장은 그 어느때보다 냉정해질 것이다.]

 

여기서 보고서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13조 달러 규모의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애초에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빌려준 '불량 대출'이 문제였다. 그러나 2028년의 문제는 다르다. 신용 점수 780점 이상의 우량 대출자들이 문제다. 대출 시점에는 안정적인 고소득자였지만, AI로 인해 직업과 소득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대출은 처음부터 좋은 대출이었다. 세상이 그 이후 바뀐 것'이라는 표현이 보고서의 가장 섬뜩한 문장이다. 대출 상품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AI 라는 외부 환경의 변화가 위기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한국과 대만은 AI 인프라에 필요한 반도체를 공급한다는 이유로 초기에는 반사이익을 누린다. 반면 미국 IT 기업에 저렴한 인력을 공급해 온 인도의 IT 서비스 산업은 직격탄을 맞는다. TCS, 인포시스 같은 인도 대형 IT 기업들이 줄줄이 계약 취소에 직면하고, 루피화 가치가 4개월 만에 18% 폭락하면서 IMF가 인도와 '예비 협의'를 시작한다는 시나리오도 담겨 있다. 보고서는 이런 현상을 '유령 GDP(Ghost GDP)'라고도 부른다. 경제 생산량은 높게 유지되지만, 그 과실이 AI를 소유한 소수 자본가에게만 돌아가고 일반 가계를 거쳐 순환하지 않는다는 개념이다. 국가 세수도 줄어든다. 세금의 근간인 급여와 소득세가 증발하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GDP 대비 노동 소득 비중이 202456%에서 202846%로 급락한다고 시나리오를 그렸다. 현대사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노동 소득 감소다.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실이 순환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세수는 줄고 복지 지출은 늘어나는 최악의 재정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보고서 공개 다음 날, 월가는 즉각 반응했다. 다우지수가 800포인트 이상 빠졌고, 소프트웨어 주식 ETF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도어대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KKR, 블랙스톤 등이 하루에 8% 이상 폭락했다. 우버, 비자, 마스터카드도 급락했다. 보고서는 온라인에서 수백만 회 조회됐고,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포춘 등 주요 언론이 잇따라 분석 기사를 냈다.

 

물론 반론도 나왔다. 헤지펀드 시타델은 즉각 반박 보고서를 냈다. 실제로 2026년 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 공고는 전년 대비 11% 증가했으며, AI의 실제 업무 활용률은 예상보다 훨씬 낮다는 데이터를 제시했다. 도이체방크의 AI는 보고서를 분석해 긍정적인 단어보다 부정적인 단어가 3.4배 많은 설득 위주의 감성적 수사라고 평가했다. 시타델은 ATM이 등장했을 때 은행 창구 직원이 더 늘었고, 엑셀이 나왔을 때 회계사가 더 늘었다며 기술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강조했다. 또한 AI의 빠른 확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화이트칼라 업무 전체를 AI로 대체하려면 현재보다 수십 배 많은 컴퓨팅 자원과 전력이 필요한데, 이는 AI의 한계 비용을 오히려 끌어올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들 스스로 이것은 예측이 아닌 경고라고 했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가 그대로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고의 본질, AI가 가져올 변화의 속도가 사회와 제도가 적응하는 속도를 훨씬 앞설 수 있다는 문제 제기는 날카롭다. 보고서는 카나리아는 아직 살아있다 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위험이 아직 임박하지 않았지만, 지금이 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일 수 있다는 뜻이다. 필자도 그렇고 우리는 앞으로 직업과 자산을 AI로부터 지켜야 하는 세대다. 이 보고서가 예언이 아니라 경고임을 명심하면서 내 직업과 자산이 어떤 전제 위에 서 있는지를 지금 점검하는 것, 그것이 이 보고서를 읽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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