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쇼핑의 풍경이 바뀌려 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테크 업계의 기류를 살펴보면 무언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다들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구글과 메타가 한 해 수백조 원을 벌어들인 비밀이 있는데 그 구조가 통째로 무너지는 중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쿠팡, 네이버, 아고다 같은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써온 쇼핑몰같은 형태 자체가 곧 사라지거나 대격변에 가까운 변화 또는 혁신이 필요해지고 있는 중이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건 '어텐션 이코노미'에서 '인텐트 이코노미'로의 대전환이다. 지금까지 구글이 연 매출 300조 원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사용자의 의도(인텐트)를 가장 잘 '추정'해 왔기 때문이다. 누가 '무선 청소기'를 검색하면 구글은 속으로 '이 사람 청소기 사려는 것 같네'라고 추정해서 청소기 쇼핑몰 광고를 띄운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어디까지나 '추정'이라는 점이다. 핸드폰 앞에서 관련 내용을 몇 분간 떠들고 나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면 떠든 내용과 관련된 광고가 계속 나오는 것은 실험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구글은 수십 년간 그 추정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A/B 테스트를 하고 클릭을 추적하고 체류 시간을 재고 마이크로 들리는 대화까지 분석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 왔던 것이다.
그런데 AI 에이전트 시대가 되면 이 전제가 깨진다. 이제는 사용자가 직접 대놓고 말한다.
"주말에 친구 결혼식 가는데 예산 15만 원 안에서 깔끔한 정장 한 벌 추천 해줘." 이걸 들은 에이전트는 더 이상 의도를 '추정'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입력이 들어온 대로 답을 주면 된다. 추정을 할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 구글과 메타가 그동안 쌓아온 거대한 노하우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진다. 천조 원짜리 시장이 새 주인을 찾아 공중에 떠버린 셈이다.
더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다. 내 의도를 파악한 에이전트가 그 의도를 실행해 줄 누군가를 찾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이걸 '인텐트 라우터'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방식이 기존 검색과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게 요점이다. 예를 들면 역경매. 내가 "25만 원 이하 호텔 방 찾아"라고 하면 전국 호텔 에이전트들이 내 에이전트한테 역으로 비딩을 걸어온다. "저희는 23만 원에 조식 포함이요." "저희는 22만 원인데 체크인 2시간 빨리 해드려요." 이걸 머신 대 머신으로, 밀리초 단위로 처리한다.
이게 얼마나 파괴적인지 호텔업계의 예시가 딱 들어온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아고다나 호텔스닷컴이 지금 어떻게 돈을 버는지 보자. 이들은 사실 호텔 방을 직접 갖고 있는 게 아니다. 힐튼, 메리어트 같은 체인 호텔의 빈방 정보를 중간 에그리게이터(도매상)이 받아서 아고다에 넘기고, 아고다는 거기에 마진을 붙여 나한테 판다. 아고다가 실질적으로 갖고 있는 자산은 내 신용카드 정보와 내 예약 이력 두 가지뿐이다 그런데 AI 에이전트 시대가 되면 이 두 데이터가 모두 '나'한테 쌓인다. 아고다 서버가 아니라 내 에이전트한테 말이다. 그러면 아고다는 뭐가 남을까? 없다. GPT-4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호텔 서드파티가 가장 먼저 망하겠구나" 하는 전망이 돌았던 건 다 이런 맥락이었다.
이걸 '헤드리스 커머스'라고 부른다. 사용자 인터페이스(UX)가 필요 없어진다는 뜻이다. 예쁜 홈페이지, 매끈한 앱 디자인, 할인 쿠폰 팝업은 사람한테 물건을 팔기 위한 장치였는데, 상대가 기계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에이전트끼리 거래할 때 필요한 건 깔끔한 API, 즉 정보 뿐이다. 배달앱 시대에 정식 식당 대신 '고스트 키친'이 생겨난 것과 같은 원리다. 손님을 맞을 홀이 필요 없으니 주방만 있으면 된다. 쇼핑몰도 이제 '고스트 쇼핑몰'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홈페이지가 없는 쇼핑몰, 상상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여기서 또 하나 짚어야 할 게 있다. 이런 구조 변화는 '언번들링'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쇼핑몰 하나에는 세 가지가 묶여 있었다. 내 개인 데이터(카드, 주소, 구매 이력), 쇼핑몰 자체의 상품 데이터, 그리고 사용자 경험(UX)이다. 과거 PC 시절에는 데이터가 내 컴퓨터 안에 있었는데, 웹과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편리함을 대가로 개인 데이터를 쇼핑몰 서버에 '자진 납세' 해왔다. 그런데 에이전트 시대가 되면 이게 다시 분리된다. 내 개인 데이터는 내 에이전트한테 쌓이고, 쇼핑몰에는 상품 데이터만 남는다. UX조차 기계 대 기계 거래가 되면 필요 없어진다. 쇼핑몰에 남는 건 '상품 카탈로그와 결제 API' 단 두 가지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구조가 편리해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개인 데이터가 내 쪽으로 넘어오는 순간 내 에이전트는 내 건강 데이터, 언어 학습 이력, 운동 패턴, 취향까지 전부 손에 쥐게 된다. 건강 보조제를 주문할 때 내 건강 데이터를 이미 알고 있는 에이전트가 '이건 사도 되고 이건 안 된다'를 자동으로 걸러주는 식이다. 지금까지는 쿠팡이 내 구매 이력을 쥐고 있어서 나한테 추천을 해줬다면, 앞으로는 내가 내 데이터를 쥐고 쇼핑몰한테 조건을 걸게 된다. 주도권이 소비자한테 넘어오는 거다.
그럼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질문. 결제까지 에이전트한테 맡길 수 있을까? 당장은 아니다. 유럽의 '집사' 문화가 좋은 비유가 되는데, 새로 들어온 집사한테 처음부터 금고 열쇠를 주는 사람은 없다. 3개월 정도 써보고 '어, 이 사람 제법 하네' 싶으면 10만 원짜리 심부름부터 맡긴다. 그다음엔 100만 원, 그다음엔 특정 쇼핑몰 거래 전권. 신뢰가 쌓이는 만큼 권한이 넘어간다. 이미 자산운용사에 재산을 맡기는 문화가 있는 걸 보면 에이전트에게 쇼핑을 통째로 맡기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꽤 오래 머리에 남은 화두가 하나 있다. "굳이 스마트폰이 필요할까?" 에이전트가 음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 주면 그 결과를 굳이 화면으로 볼 이유가 없다는 거다. 생수가 떨어지면 "생수 주문 해줘" 하고, 나중에 "배송됐습니다" 하는 보고만 받으면 끝. 24시간 마이크를 차고 다니며 6개월만 음성 데이터가 쌓이면 에이전트가 나를 '나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오픈AI가 조니 아이브 회사를 인수해서 만들고 있는 음성 디바이스가 이 방향이라는 분석도 나오는 중이다. 아이폰을 대체하는 것이 또 다른 아이폰이 아니라 '화면 없는 목걸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뭘 준비해야 할까. '어번던트(풍요로운 것)'와 '스케어스(희소한 것)'를 구분하는 게 핵심이다. 과거에 희소했던 능력 중에 지금 풍요로워진 것이 뭔지 생각해 보라는 얘기다. 대표적인 게 코딩인데 1년 전만 해도 개발자 연봉이 천정부지였다. 지금은 코딩 에이전트가 사람 개입 없이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단계까지 왔다. 이미 SaaS 시장이 술렁이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게 어려웠기 때문에 비즈니스가 됐던 건데, 만들기 쉬워진다면 가격은 0으로 수렴한다.
지금은 극 초기이기 때문에 이 변화의 끝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쇼핑몰도 검색엔진도 어쩌면 스마트폰도 형태가 바뀔 수 있는 극초기. 아직 판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공포일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보면 모두에게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1년 뒤에도 3년 뒤에도 유효할지, 내 회사가 가진 강점이 이 새 판에서도 강점으로 남을지. 이 질문을 지금 던져보지 않으면 어느 날 아고다처럼 중간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쪽이 될지도 모른다. 2026년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변곡점의 한가운데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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