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IT업계에서 언제나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이 연일 화려한 신모델을 내놓으며 "일자리가 곧 사라진다" "초지능이 코앞이다"를 외치는 동안, 정작 AI의 시작을 알린 ‘원조 맛집’ 구글은 조용히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구글이 정말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같은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구글이 2026 I/O에 도대체 어떤걸 들고 올지 기대감만 커졌다. 발표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역시 구글이다.
이번 키노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발표를 꼽으라면 단연 '제미나이 옴니(Gemini Omni)'다. 이름 그대로 '만능'이라는 뜻인데, 텍스트·이미지·영상·음악·인터랙티브 시뮬레이션까지 한 모델 안에서 실시간으로 처리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백질 접힘을 점토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설명해줘"라고 시키면 실제로 알파헬릭스와 베타시트가 접히는 영상이 점토 인형 풍으로 뚝딱 만들어진다. 놀라운 점은 사용자가 본인 셀카를 넣으면 그 안의 옷, 배경, 분위기를 자연어 한 줄로 바꿔버린다는 점이다. 영화 후반 작업실 하나가 통째로 작은 박스 안에 들어간 격이다.
또 하나의 핵심은 '제미나이 스파크(Gemini Spark)'라는 개인 에이전트다. 이게 왜 충격적이냐면 지금까지의 챗봇은 사용자가 채팅창을 열고 질문해야만 작동했다. 켜놓고 자리를 비우면 그저 빈 화면지만 스파크는 다르다. 구글 클라우드의 전용 가상 머신 위에서 24시간 돌아간다. 노트북을 닫아도, 출근을 해도, 사용자를 위해 백그라운드에서 일을 한다. 발표 중 시연이 인상적이었다. "순다르가 참여하는 다음 회의들을 전부 핫핑크로 표시해줘. 어젯밤 만난 옆집 새 이웃 존한테 블록 파티 초대 메일을 써줘. 학기말까지 아이들 일정을 마감일과 우선순위로 정리한 문서를 만들어줘." 이 세 가지를 말로 던지고 발표자는 그냥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잠시 뒤 모두 완료되어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AI 에이전트'라고 부르던 것의 정체가 이제 비서를 한 명 고용한 것과 같아진 것이다. 부탁만 해놓으면 알아서 검색하고 정리하고 메일 보내고 일정 잡고 결과만 가져온다. 구독 가격을 보면 더 흥미롭다. 기존 250달러였던 최상위 요금제는 200달러로 '내렸고', 그 사이에 100달러짜리 신규 플랜이 끼어들었다. 며칠 전 오픈AI와 앤트로픽이 요금을 슬쩍 올리려던 시도와는 정반대 행보다. 흑자를 내고 있는 회사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다.
이 여유는 다음 발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제미나이 3.5 플래시' 모델은 출력 속도가 경쟁 프런티어 모델 대비 무려 네 배 빠르면서도 성능은 정상급이다. 그동안 개발자들 사이에서 '빠르고 싸지만 똑똑하지는 않다'던 플래시 계열의 한계를 단숨에 허문 셈이다. 게다가 이 모델을 '안티그래비티(Antigravity) 2.0'이라는 에이전트 전용 개발 환경과 함께 엮어 내놨다. 시연에서는 이 환경을 통해 에이전트가 '운영체제를 처음부터 만들어보라'는 지시를 받았고 결과적으로 자체 OS 위에서 그 유명한 '둠(Doom)'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코딩 도구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이제 1인 개발자가 작은 스튜디오 한 곳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대도 머지않았다.
가장 일상에 가까운 변화는 검색 영역에서 일어났다. 25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던 '검색창'이 통째로 바뀌었다. 이제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파일·영상까지 한꺼번에 던질 수 있고, AI는 그 모든 것을 가로지르며 답을 만든다. 더 놀라운 건 답이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는 점이다. '블랙홀이 시공간을 어떻게 휘게 하는가'를 물으면, 그 자리에서 인터랙티브 시각화 위젯이 생성된다. 다음 질문으로 '쌍성 블랙홀이 만드는 중력파'를 물으면, 또 다른 맞춤형 시각화가 즉석에서 만들어진다. 위키피디아 검색이 영상 강의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검색에는 또 한 가지 새 기능이 붙는다. '정보 에이전트(Information Agent)'라는 이름의 백그라운드 감시자다. 예를 들어 이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햇빛 잘 드는 방 두 개짜리, 출퇴근 30분 이내, 월세 얼마 이하" 같은 조건을 한 번 설정해 두면, AI가 부동산 사이트, SNS, 커뮤니티 게시판까지 24시간 훑으며 조건에 맞는 매물이 올라오는 순간 알림을 보낸다. 운동화 마니아라면 "좋아하는 선수가 새 협업 모델을 발표하면 알려줘"라고 시킬 수도 있다. 검색이 한 번 던지고 끝나는 도구가 아니라 상시 일하는 사냥꾼이 되는 셈이다.
쇼핑 영역에서도 한 방이 있었다. '유니버설 카트(Universal Cart)'라는 새로운 장바구니가 그것이다. 검색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심지어 지메일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제품을 카트에 담으면 그때부터는 AI가 알아서 가격 변동을 추적하고 품절됐다가 재입고되면 알려주고 더 싼 곳을 찾으면 추천해준다. 쿠팡과 네이버를 동시에 압박할 만한 무기인데 한국 시장 진입은 아직 미지수다. 다만 흐름은 명확하다. '쇼핑몰'이라는 단일 사이트의 존재 이유가 점점 흐려진다는 것. 사용자는 더 이상 어디서 사느냐를 고민하지 않고 무엇을 사느냐만 결정하면 된다.
생산성 도구에도 손이 갔다. '데일리 브리프(Daily Brief)'라는 기능은 매일 아침 사용자의 메일함, 캘린더, 할 일 목록을 통째로 훑은 뒤 '오늘 놓치면 안 되는 것들'만 골라 한 장의 요약 카드로 만들어준다. 단순한 요약이 아니라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제안한다. 도서관에 책 반납하기, 출장 항공편 확인, 미팅 30분 전 자료 훑어보기 같은 잡일들이 그 카드 위에 정렬된다. 비서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오늘 일정 브리핑 드릴게요"를 시작하는 그림 그대로다.
웨어러블 분야에서는 화면이 없는 '오디오 글래스'가 등장했다. 안경 형태인데 디스플레이가 없다. 대신 귀에 작은 스피커가 달려 제미나이가 속삭여준다. 시연자가 "지난주 친구 잔나를 만났던 그 장소로 안내해줘"라고 말하자 안경이 길을 안내하면서 동시에 "가는 길에 콜드브루 한 잔 픽업하시겠어요?"라고 묻는다. 사용자가 동의하니 폰 안의 도어대시 앱을 알아서 열어 평소 주문하던 메뉴를 골라 결제 직전까지 진행해 놓는다. 사용자는 "예"만 말하면 끝이다. 스마트폰을 꺼내는 행위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모든 발표 뒤에 깔린 진짜 메시지는 다른 곳에 있었다. 키노트 마지막을 장식한 순다르 피차이의 말이다. "AGI(범용 인공지능)는 이제 지평선 위에 있다. 우리는 특이점의 산기슭에 서 있는 것이다." 한 기업의 CEO가 공식 무대에서 '특이점'이라는 단어를 직접 입에 올린 것은 흔치 않은 장면이다. 구글이 가진 자신감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진다. 알파어스 파운데이션이라는 지구 디지털 트윈을 통해 산림 파괴와 식량 위기를 풀고, 아이소모픽 랩스의 약물 발견 AI가 면역 질환과 암 치료제의 전임상 단계에 진입한다는 소식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지난 몇 년간 AI 시장의 '목소리 큰 주연'은 오픈AI였다. 앤트로픽이 빠르게 그 옆을 차지했다. 그동안 구글은 묵묵히 인프라를 깔며 '조용한 거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번 I/O는 그 구도가 흔들리는 시점이 됐다. 검색, 메일, 문서, 유튜브, 안드로이드, 크롬, 맵스라는 일상 진입로를 전부 쥔 회사가 이제 모든 진입로에 에이전트를 심어 놓는다. 평범한 사용자가 'AI를 쓴다'는 인식조차 없이 AI 안에서 살게 되는 시대, 그 속도에서 구글은 누구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꽉 찬 수레는 조용하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 구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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