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평소 들어가던 사이트가 갑자기 낯선 경고 페이지로 바뀌었다는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인터넷 검열이 네 번째 시즌에 접어든 순간이다. 나는 이 추격전을 기술적으로만 훑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료를 따라가다 보니 한 가지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됐다. 우리는 지금 어느 편에 서 있는가.
검열의 역사는 단순했다. 초기 인터넷은 암호화 없는 HTTP로 통신했고, 데이터가 발가벗은 채 오가니 통신사가 길목을 막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HTTPS가 등장해 데이터가 잠긴 봉투에 담기자 정부는 DNS로 눈을 돌렸다. 도메인 이름을 IP 주소로 바꿔주는 이 길목에서 불법 사이트 주소를 물어보면 엉뚱한 곳을 돌려줬다. 우리가 보던 워닝 페이지의 정체다. 그러자 사람들은 구글의 8.8.8.8 같은 해외 DNS로 갈아탔다. 다음은 SNI였다. 암호화 직전 단계에 목적지 주소가 노출된다는 약점을 노려 2019년 차단을 시작했지만, SNI마저 암호화하는 기술과 클라우드플레어가 등장하며 또 무력화됐다. 막으면 뚫고, 뚫으면 다시 막았다.
그리고 마침내 정부는 인터넷의 거대한 방패 클라우드플레어를 직접 압박했다. 2026년 5월부터 본격화된 이번 차단이 그 결과다. 흥미로운 건 클라우드플레어가 미국 무역대표부에 낸 하소연이다. 한국이 150만 개가 넘는 URL 차단을 요청했고 매달 3만 개씩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전례 없는 규모라고 했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숫자다.
여기서 분명히 해두고 싶다. 불법 웹툰과 불법 도박 사이트를 막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것을 막는 방식과 규모, 그리고 그 칼끝이 향하는 방향이다.
프리덤하우스가 매년 발표하는 인터넷 자유 보고서는 전 세계 72개국을 평가한다. 2025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인터넷 자유는 15년 연속 후퇴했다. 조사 대상 72개국 중 무려 57개국에서 사람들이 온라인 표현을 이유로 체포되거나 투옥됐다. 사상 최고치다. 차단과 감시는 이제 권위주의 국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쯤일까. 보고서는 한국을 '완전한 자유'가 아닌 '부분적 자유' 국가로 분류한다. 그것도 2년 연속이다. 점수는 100점 만점에 65점. 아이슬란드 94점, 에스토니아 91점과 비교하면 한참 아래고, 같은 아시아의 일본 78점에도 못 미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깔아놓고도 우리는 그 인터넷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나라인 것이다. 이건 입장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점수로 찍힌 명백한 현실이다.
이제 남은 마지막 우회로는 VPN뿐이다. 데이터를 통째로 암호화하고 해외 서버를 경유하니 중간에서 들여다볼 틈이 없다. 정부가 이걸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 손대지 못했다. VPN을 전면 금지한 나라는 사실상 중국과 북한 정도이기 때문이다. VPN은 검열의 마지노선이다. 이 선을 넘는 순간 우리는 공산국가나 다름없게 되는 것이다.
검열을 옹호하는 논리는 늘 그럴듯하다. 모든 정책은 좋은 의도로 시작한다. 처음엔 불법 콘텐츠였다. 그런데 정부가 권장하는 것과 금지하는 것은 시대마다, 정권마다 달라진다. 한번 깔아둔 차단 기술은 대상을 바꿔가며 얼마든지 다시 쓰일 수 있다. 오늘은 도박 사이트지만 내일은 무엇이 그 명단에 오를지 누구도 보장하지 못한다. 150만 개라는 숫자가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우리는 투명하게 확인할 수 없다.
차단 대상은 늘었는데 정작 불법을 저지른 운영자들은 해외 서버 뒤에서 멀쩡하다. 손 쉬운 통제를 택하고 어려운 추적은 미뤄둔 결과다. 말 그대로 바바리맨 잡겠다고 바바리를 금지 시킨 상황이다. 150만 개의 문에 빗장을 거는 동안, 정부는 우리가 어디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조용히 정하는 권한까지 손에 쥐었다. 그 명단에 무엇이 들었는지 우리는 확인할 길이 없다. 자유를 한 칸 내주는 일은 언제나 사소한 명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한 칸은, 한번 내주고 나면 좀처럼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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