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장기 '뽑아서' 교체한다.

 

우리는 프린팅이라는 단어는 보통 종이로 무엇을 하는 행위로 우리가 인식하고 있다. 이젠 종이가 아니라 살아있는 간세포를 잉크가 아닌 끈적한 젤리가 노즐을 빠져나와 한층 한 층 쌓는 프린팅을 한다. 갓 출력된 간 조각은 젤리처럼 반투명한 색을 띤다. 장기이식을 위해 기나긴 대기 줄을 기다리고, 이식 후 거부반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며, 고장 난 자동차 부품을 갈아 끼우듯 낡은 장기를 교체하는 시대가 정말로 열리려고 한다.

 

플라스틱도 금속도 아닌, 조금만 거칠게 다뤄도 터지고 죽어버리는 세포, 즉 살아있는 세포를 어떻게 프린터로 쏜단 말인가. 답은 잉크에 있다. 3D 바이오프린팅의 핵심은 바이오잉크다. 그런데 이 잉크의 정체가 기가 막히다. 연구팀은 진짜 장기를 가져와 그 안의 세포를 모조리 빼낸다. 그러면 세포가 빠지고 남은 구조물, dECM(탈세포화 세포외기질, 쉽게 말해 세포가 원래 살던 집의 골조)이 남는다. 세포에게 ECM은 단순한 받침대가 아니라 평생 살아온 고향 같은 곳이다. 그 익숙한 환경에 들어가야 세포는 가장 행복하게, 가장 오래, 가장 제 기능을 잘 하며 살아간다. 간 조직에서 추출한 잉크에는 간세포를, 심장에서 뽑은 잉크에는 심근세포를 태워 보내는 식이다. 세포를 가장 잘 살게 하는 맞춤형 보금자리를 잉크로 구축한 것이다.

 

이 잉크는 인쇄되자마자 살짝 굳어 끈적한 젤리가 되고, 체온과 비슷한 온장고에 들어가면 한 번 더 굳어 손에 묻지 않는 단단한 조각이 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간을 간처럼 생기게 만드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간 모양을 똑같이 빚어낸들, 모양만 같다고 해독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력된 간 조각은 우리 몸속 간과 달리 네모나고, 크기도 작다. 형태가 아니라 오직 기능, 즉 간세포가 최대로 살아남고 최대로 일하는 효율에만 초점을 맞춰 설계하는 것이다. 문제는 심장처럼 모양 그 자체가 곧 기능인 장기다. 좌심실은 그냥 피를 담는 주머니가 아니다. 근육 섬유가 나선형으로 비스듬히 감겨 있어서, 수축할 때 마치 젖은 빨래를 비틀어 짜듯 혈액을 온몸으로 쥐어짜 내보낸다. 위쪽과 아래쪽의 결 방향까지 미묘하게 다르다. 이 자연의 섭리를 모사하려면 위아래로만 움직이는 프린터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축이 3개에서 6개로 늘어난 프린터다. 360도로 돌아가는 로봇 손목이 붙어, 동그라미도 나선도 굴곡진 표면도 자유자재로 그려낸다. 평면에 벽돌을 쌓듯 각진 조각밖에 못 만들던 기계가, 이제 심장의 나선 결까지 따라 그리게 된 것이다.

 

공급보다 수요가 넘치게 많은 것, 바로 장기이식이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통계를 보면 2024년 국내 장기이식 대기자는 45,567명에 달한다. 그런데 같은 해 뇌사 장기 기증자는 단 397명이었다. 2020478명에서 오히려 줄어든 숫자다. 수요는 4만 명을 넘는데 공급은 400명도 안 되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불균형이다. 2024년 한 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끝내 받지 못하고떠난 사람이 3,096, 하루 평균 8.5명 꼴이다. 신장 이식을 받으려면 평균 2,888, 거의 8년을 기다려야 하고, 이런 점을 악용하여 장기 브로커같은 것들이 생기는 것이다. 인공장기는 SF적 호기심의 산물이 아니라, 이 잔인한 대기 줄을 끊어내기 위한 공학의 응답이다.

 

세계는 이미 출발선을 넘었다. 20226, 미국의 3DBio Therapeutics는 선천적으로 귀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소두증(microtia)을 가진 20세 여성에게 3D 바이오프린팅으로 만든 귀를 이식했다.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아르투로 보니야 박사가 집도한 이 수술의 핵심은, 이식한 귀가 환자 본인의 귀 연골세포로 프린팅한 '살아있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거부반응 걱정이 없는, 세계 최초의 세포 기반 3D 프린팅 장기 이식이었다. 비슷한 시기 이스라엘 텔아비브대는 환자의 세포와 혈관까지 담은 인공심장을 출력해냈고, 독일 연구진은 심근세포에 콜라겐과 히알루론산을 섞은 잉크로 작은 심실을 찍어냈다. 인공 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호흡을 담당하는 기도(氣道) 조직이 임상에 들어갔다. 공상과학이 실험실을 지나 수술실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내 간을 주문할 수 없는가. 의외로 발목을 잡는 것은 프린터가 아니다. 연구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기술 그 자체로는 주먹만 한 심장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진짜 병목은 재료, 즉 세포다. 사람 심장 하나를 채우려면 세포가 1010, 무려 100억 개 가까이 필요하다. 인큐베이터 여섯 대를 세포로 가득 채워 키워도 그 하나를 만들기가 버겁다. 건축 기술은 완벽한데 벽돌이 모자란 셈이다. 여기에 자동화와 인공지능에 등장하게 된다. 간을 진짜처럼 만들려면 간세포만으로는 안 되고 혈관세포, 섬유아세포 등 여러 세포를 정교한 비율로 조립해야 하는데, 혈관이 너무 많으면 정작 일할 간세포의 자리가 줄어든다. 이 미세한 황금비를 사람이 일일이 계산할 수 없어 설계의 모든 과정에 AI의 도움을 받는다. 조립 단계도 마찬가지다. 부들부들 잘 터지는 세포 덩어리를 사람 손으로 집으면 떨어뜨리고 뭉개기 일쑤지만, 음향 집게(acoustic tweezers : 초음파로 물체를 비접촉 상태에서 붙잡는 장치)1초에 4만 번 진동하며 공기와 유체를 빨아들여 세포를 건드리지 않고 정확히 옮긴다. 사람보다 빠르고, 사람보다 깨끗하게. 인공장기 공장의 풍경이 이미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다.

 

놀랍게도 대한민국은 해당 분야의 기초 체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포스텍 조동우 교수팀은 앞서 말한 dECM 바이오잉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해 왔고, 포스텍 안에는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응용기술센터까지 세워졌다. 놀라운 프린팅과 음향 집게 역시 우리 연구진의 손끝에서 나온 것이다. 문제는 늘 그다음이다. 세계 3D 바이오프린팅 시장은 202323억 달러에서 203053억 달러 규모로 커지고, 3D 프린팅 장기 시장만 떼어 봐도 68억 달러까지 전망되는데, 연구실의 성과가 임상과 산업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우리에겐 너무 좁다. 세포를 대량 생산할 인프라, 인체 적용을 검증할 임상 체계, 그리고 무엇보다 첨단재생의료를 둘러싼 규제와 인재의 문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잉크를 만들어 놓고도, 정작 그 잉크로 사람을 살리는 마지막 관문에서 번번이 발이 묶이는 것은 아닐지 씁쓸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이식할 수 있는 간은 언제 나올까? 제작 기술만으로는 10년 이내에 도달할 수 있지만, 세포를 충분히 길러내고 인체에 무해한지 오래 지켜보는 시간까지 더하면 통상 기술 완성 시점에 다시 10년을 얹어야 한다고. 합치면 약 20. 지금 마흔인 사람이 예순에, 자신의 간에 암이 생기면 새 간을 '주문'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이야기다. 낡은 장기를 고장 난 부품처럼 교체하는 그 미래는, 어쩌면 우리 세대가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구진들은 인정한다. 아직은 심장과 간과 폐 같은,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는 장기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하지만 자신들의 기술 중 무엇으로라도 한 사람의 생명을 단 며칠, 몇 주라도 더 늘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큰 기쁨이라고 했다. 100억 개의 세포를 일일이 배열하고 혈관과 간세포의 황금비를 맞추는 일은 본래 사람의 손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이 바로 AI. 설계도 조립도 AI가 떠받치는 지금, 누군가의 며칠을 늘려 줄 새 장기는 더 이상 공상이 아닌 것이다. 기술이 사람을 살리는 가장 따뜻한 미래가 AI의 손끝에서 이미 출력되기 시작했다.

 

[참고 자료 출처]
· 씨즈(SИЗ) 영상 「인간의 간이 프린팅되고 있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s16mzdlXjaI
· 포스텍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응용기술센터 https://3dop.postech.ac.kr/html/main/main.php
· Axios, "3D ear printed with human cells implanted in woman with microtia" https://www.axios.com/2022/06/02/printed-ear-implant-microtia
·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 통계 https://www.konos.go.kr/board/boardListPage.do?page=sub4_2_1&boardId=30
· Science Advances, "Generating multifunctional acoustic tweezers...contactless, precise manipulation of bioparticles"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bb0494
· Grand View Research, "3D Bioprinting Market Size & Share Analysis Report, 2030" https://www.grandviewresearch.com/industry-analysis/3d-bioprinting-market

 

3D Bioprinting Market Size And Share | Industry Report, 2033

3D bioprinting market size was valued at $3.07 billion in 2025 and is projected to reach $6.67 billion by 2033, growing at CAGR of 9.71% from 2026 to 2033

www.grandviewresearch.com

 

 

Generating multifunctional acoustic tweezers in Petri dishes for contactless, precise manipulation of bioparticles

Acoustic tweezers enable contactless, dynamic, precise, and multifunctional manipulation of bioparticles in Petri dishes.

www.science.org

 

 

바이오프린팅 인공장기 응용기술센터

바이오프린팅 활용 동물대체시험평가 기술지원, 센터소개, 참여기업 등 사업 안내

3dop.postech.ac.kr

 

 

 

자료>통계>통계연보 |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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