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명 공학, 임상 실험 시작

 

단백질의 구조를 예측한 인공지능 알파폴드(AlphaFold)가 노벨화학상을 받은 게 2024년이다.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 그리고 데이비드 베이커가 화학자 출신이 아닌데도 화학상을 거머쥐었을 때, 세상은 AI가 마침내 생명과학의 문턱을 넘었다고 환호했다. 그런데 그 문턱을 넘은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AI는 벌써 그다음 방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올해 초 딥마인드의 신약개발 자회사가 공개한 새 모델을 두고 컬럼비아대의 한 계산생물학자는 "사실상 알파폴드 4"라고 불렀다. 단백질의 생김새를 '맞히는' 수준을 넘어, 이제 AI가 약을 직접 '설계'하고 세포와 유전체를 통째로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조를 넘어 설계로

 

알파폴드(AlphaFold : 아미노산 서열만 보고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AI)가 대단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단백질은 그 생김새가 곧 기능이고, 그 생김새의 어느 주머니에 약물 분자가 들어가 맞물리느냐가 신약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 걸리던 구조 규명이 몇 초로 줄었으니 혁명이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지도를 손에 쥐었다고 목적지에 저절로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약물 하나가 몸속 단백질과 제대로 맞물리려면 수백만 개의 후보 분자 가운데 딱 맞는 열쇠를 찾아야 하는데, 그 궁합을 실험실에서 하나하나 확인하는 데만 수년의 시간과 수백억 원의 비용이 든다. 구조를 아는 것과 약을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AI는 바로 그 수백만 번의 시행착오를 화면 안에서 몇 시간 만에 끝내버린다. 딥마인드에서 갈라져 나온 아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는 올해 210, 27페이지짜리 기술 보고서와 함께 신약설계엔진 IsoDDE를 공개하며 바로 그 간극을 메우기 시작했다. 이 모델은 단백질과 약물 후보가 어떻게 결합하는지, 그 결합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나타내는 결합친화도까지 예측하는데, 물리학 계산에 기반한 기존의 정밀 기법 FEP를 정확도에서 앞질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약물 주머니, 이른바 '크립틱 포켓'을 서열만 보고 찾아냈고, 가장 까다로운 단백질-리간드 시스템에서 전작인 알파폴드3보다 정확도를 두 배 이상 끌어올렸다. 항체가 표적에 달라붙는 고난도 예측에서는 알파폴드32.3배라는 수치를 내놨다. 신약개발에서 가장 비싸고 오래 걸리는 초기 설계 단계를, 이제 소프트웨어가 대신 그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DNA를 언어처럼 읽고 쓰다

 

방향은 신약만이 아니다. 생명 그 자체를 하나의 '언어'로 다루는 파운데이션 모델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크 연구소와 엔비디아가 함께 만든 Evo 2128천여 종의 게놈에서 뽑은 93천억 개의 염기서열을 학습한 40억 파라미터 규모의 모델로, 이는 웬만한 거대언어모델에 맞먹는 덩치다. 한 번에 100만 개의 뉴클레오티드를 통째로 읽어 유전자의 멀리 떨어진 구간끼리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파악하고, 심지어 자연에 존재하지 않던 합성 유전체와 박테리오파지(세균을 잡아먹는 바이러스)까지 설계해낸다. 딥마인드가 지난해 내놓은 알파지놈(AlphaGenome)100만 개의 염기쌍을 단일 염기 해상도로 읽어, 인간 질병의 상당수가 숨어 있다는 '비암호화' DNA 영역의 변이가 유전자 발현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예측한다. 24개의 평가 항목 중 22개에서 기존 최고 모델을 눌렀다. 마크 저커버그 부부가 세운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CZI)12개 종, 15억 년의 진화를 아우르는 112백만 개의 세포를 학습시켜, 세포 하나하나를 '문장'처럼 읽어내는 가상세포 모델을 만들고 있다. 인간의 언어를 배운 GPT가 다음에 올 단어를 예측하며 문장을 지어내듯, 이제 AI가 생명의 언어를 배워 세포와 유전체를 한 글자씩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실험실에서 몇 년이 걸릴 가설 검증을, 컴퓨터 안의 가상세포에서 먼저 돌려보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단백질 접힘 하나를 맞히는 데서 출발한 AI, 이제는 생명 현상 전체를 하나의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혁명의 청구서, 개방에서 블랙박스로

 

이 흐름이 왜 혁명인가. 통상 4년에서 5년이 걸리던 신약 후보 발굴이 12개월에서 18개월로, 70% 가까이 단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AI 신약개발에 몰린 투자만 20억 달러를 넘어섰고, 아이소모픽은 시리즈B 한 번으로 21억 달러를 끌어모아 노바티스와 일라이 릴리, 존슨앤드존슨을 파트너로 세웠다. AI가 설계한 약이 실제 사람 몸에 들어가는 첫 임상도 이미 시작됐다. 인실리코 메디슨이 AI로 발굴하고 설계한 폐섬유증 치료제는 임상 2상에서 양성 결과를 내며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실렸다. 그런데 이 화려한 성과에는 뼈아픈 청구서가 함께 붙어 있다. 알파폴드는 논문과 코드를 전부 공개해 전 세계 연구자가 그 위에 새로운 연구를 쌓아 올릴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Evo 2, 알파지놈도, CZI의 가상세포도 모두 모델과 코드를 세상에 열어젖혔다. 그런데 유독 가장 돈이 되는 신약설계엔진만은 문을 걸어 잠갔다. IsoDDE는 철저히 비공개이고, 달랑 27페이지짜리 보고서만으로는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아무도 재현할 수 없다. 앞서 그 모델을 "알파폴드 4"라 극찬했던 바로 그 교수조차 "분명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냈지만, 벽 너머라 확인할 길이 없다"고 꼬집었다. 검증할 수 없는 과학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라 신앙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Evo 2처럼 합성 유전체와 파지를 설계하는 능력은, 뒤집어 보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병원체를 그려낼 수도 있다는 생물보안의 공포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축복과 재앙이 같은 기술의 앞뒷면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격변의 한복판에서 우리나라는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씁쓸하다. 한국은 위탁생산과 임상, 제약 그 자체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이 판 전체를 뒤집는 원천 파운데이션 모델은 단 하나도 우리 손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이런 모델은 방대한 의료·유전체 데이터를 먹고 자라는데, 우리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분 아래 그 데이터를 꽁꽁 묶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인 것은, 한국이 전 국민 단일 건강보험이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대하고 정교한 의료 데이터베이스를 이미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노다지인데, 정작 이 데이터는 병원과 기관마다 섬처럼 고립돼 연구자에게 제대로 흘러가지 못한다. 대형 제약사와 대기업은 여전히 새로운 시도에 보수적이고, 정작 이 분야를 끌고 갈 인재는 데이터와 연구비를 좇아 하나둘 해외로 빠져나간다. 데이터가 곧 무기인 시대에, 정작 최고의 무기를 창고에 넣고 자물쇠를 채워둔 꼴인 것이다. 규제와 데이터를 함께 풀지 못한다면, 우리는 AI 반도체에 이어 AI 바이오에서도 또 한 번 갈라파고스로 남을 수밖에 없다.

 

AI가 생명의 코드를 읽는 것을 넘어 직접 쓰기 시작한 지금, 이 힘은 명백한 양날의 검이다. 잘 쓰면 불치병의 치료제를 몇 년은 앞당길 수 있고, 잘못 쓰면 새로운 병원체의 설계도가 된다. 개방과 검증이라는 과학의 오랜 규칙을 상업적 블랙박스가 조용히 대체해가는 흐름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물결은 이미 밀려오고 있으며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데이터와 규제, 인재라는 세 겹의 벽에 스스로를 가둔 채, 우리는 이 거대한 파도를 그저 구경만 하고 있을 것인가. 생명을 코딩하는 시대의 문은 이미 열렸다. 그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문밖에서 남의 잔치를 구경만 할 것인지, 선택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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