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주제 다른 시각

 

비슷한 시간에 두 도시에서 AI를 두고 정반대의 말이 쏟아졌다. 한쪽에서는 "이러다 통제 못 한다"는 공포가, 다른 한쪽에서는 "돈 안 되는 병까지 고쳐주겠다"는 희망이 터져 나왔다. 제네바에서는 인류가 AI를 어떻게 묶어둘 것인가를 놓고 머리를 싸맸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AI가 인간이 손대지 못한 난치병에 달려들었다. 통제의 언어와 구원의 언어가 나란히 울린 한 주였던 것이다.

 

첫 번째 장면, 제네바의 경고

 

202676일과 7,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UN)이 사상 처음으로 'AI 거버넌스 글로벌 대화(Global Dialogue on AI Governance)'를 열었다. 거버넌스라는 말이 딱딱하게 들리겠지만, 쉽게 풀면 "이 물건을 누가 어떤 규칙으로 다룰 것인가"를 정하는 자리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나온 발언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딥러닝의 대부이자 과학패널 공동 의장인 요슈아 벤지오(Yoshua Bengio)"AI가 여러 영역에서 인간의 능력에 근접하거나 이미 넘어서고 있다"고 못 박은 뒤, 더 서늘한 말을 덧붙였다. "과학은 지금, AI 능력이 커질수록 재앙적인 피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지 못한다." 만드는 사람은 있는데, 그것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인 것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언론인이자 같은 패널의 공동의장 마리아 레사(Maria Ressa)는 여기에 한 문장을 얹었다. "세계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정보 아마겟돈'이라 부르며 정보의 무결성이 이 싸움의 핵심이라고 했다. 에스토니아의 레인 탐사르 대사는 AI"위대한 평등자가 될 수도 있지만 "강압적 목적이나 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 쓰일 수도 있다.“ 고 경고했고, 엘살바도르의 에그리셀다 로페스 대사는 "AI 격차는 실재한다"며 인프라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간극을 짚었다.

 

이날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공통으로 걱정한 대목이 또 있다. AI 개발의 힘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나라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점이다. 판을 좌우하는 근육은 몇몇 손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지구 전체라는 불균형인 것이다. 그러니 "AI 격차는 실재한다"는 로페스 대사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지금 벌어지는 현실을 그대로 옮긴 것에 가깝다.

 

문제는 규칙을 만드는 속도가 기술을 도무지 따라잡지 못한다는 데 있다. 심지어 규제의 선봉장을 자처하던 유럽연합(EU)조차 고위험 AI에 대한 규정 적용 시점을 2027년에서 2028년으로 뒤로 미뤘다. 기술은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그것을 묶어둘 밧줄은 아직 매듭조차 짓지 못한 것이 지금의 풍경인 것이다.

 

두 번째 장면, 샌프란시스코의 희망

 

바로 그 즈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정반대 결의 소식이 나왔다.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630, 연구자용 AI 작업대 '클로드 사이언스(Claude Science)'를 공개하면서 동시에 자체 신약 개발 프로그램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클로드 사이언스는 자사의 AI 모델을 유전체·단백질·화학·임상 분야의 60개가 넘는 과학 데이터베이스와 직접 연결한다. 유전체 정보를 담은 NCBI, 단백질 구조 예측으로 유명한 알파폴드(AlphaFold), 임상시험 정보를 모은 클리니컬 트라이얼스 같은 것들을 한 화면에서 오가며 분석하는 도구인 것이다.

 

시연 장면이 흥미롭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의 한 연구자는 자기 팀이 1년 내내 놓치고 있던 바이러스 오염을 이 도구로 단 몇 분 만에 찾아냈다고 한다. 또 희귀 유전질환 100종을 한 시간도 안 되어 훑고 그중 32종을 후보 질환으로 추려냈다. 개발을 이끈 알렉산더 타라샨스키는 발표 현장에서 페닐케톤뇨증(PKU : 특정 아미노산을 분해하지 못해 생기는 선천성 대사질환)의 신약 후보를 AI가 스스로 찾아내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기까지 했다. 사람이 몇 달, 몇 년을 매달리던 일을 기계가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에 해치우는 셈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앤트로픽이 겨냥한 대상이다. 이들이 손대겠다는 것은 '소외질환' 인데, 기초 생물학은 어느 정도 밝혀졌지만 환자 수가 적어 약을 만들어도 돈이 안 되기에 거대 제약사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병들이다. 흥미롭게도 이 회사는 공익법인(PBC : 이윤 추구와 함께 공익 실현을 정관에 못 박은 회사 형태)으로 세워져 있어서,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치료제 개발에도 뛰어들 명분을 갖고 있다. 생명과학 총괄 에릭 카우더러에이브럼스는 소외질환 연구가 회사의 핵심 미션임을 강조하며, 이 프로젝트를 자사의 핵심 기술인 클로드 코드만큼이나 비중 있게 다룰 것이라 밝혔다. 좋은 도구를 만들려면 직접 약을 개발해봐야 한다는 논리인 것이다. 알파폴드로 2024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존 점퍼(John Jumper)마저 구글 딥마인드를 떠나 이 회사에 합류했고, 클로드 사이언스는 유료 구독자라면 누구나 쓸 수 있게 문을 열어놨다.

 

숫자를 보면 왜 판이 커지는지 짐작이 간다. 노바티스의 CEO 바스 나라시만은 신약 하나가 후보물질에서 승인까지 보통 12년이 걸리는데 AI가 이를 7~8년으로 줄이고, 성공률을 8%에서 16%로 두 배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했다. 빅파마가 매년 R&D1,500~2,000억 달러를 쏟아붓고도 120년간 내놓은 신약이 800~1,000종에 불과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속도의 스펙터클이 왜 사람들을 홀리는지 알 만하다. 이 판에 뛰어든 것이 앤트로픽만은 아니다. 구글 딥마인드가 떼어낸 신약 개발 전문 자회사 아이소모픽 랩스(Isomorphic Labs), 오픈AI가 내놓은 챗GPT 헬스까지, 이제 프런티어 AI 기업들은 도구를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신약을 만드는 주체가 되려 한다. AI 경쟁의 전선이 채팅창을 넘어 실험실로 옮겨붙은 것이다.

 

이해와 통제 사이

 

두 장면을 겹쳐 보면 묘한 지점이 드러난다. 제네바에서 레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다"고 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앤트로픽은 "직접 약을 만들어봐야 도구를 제대로 이해한다"고 했다. '이해'라는 같은 단어가 한쪽에서는 통제의 전제로, 다른 쪽에서는 돌진의 명분으로 정반대로 쓰이는 것이다. 규제하는 자는 이해가 부족해 두렵다 하고, 개발하는 자는 이해를 위해 더 깊이 뛰어든다. 공학의 눈으로 보면 이 어긋남은 사실 하나의 동전이다. 같은 도구가 난치병 환자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되고, 통제의 밧줄을 놓친 사회에는 재앙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이 현실이 될지는 도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손이 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옥스퍼드대의 캐서린 포프 같은 학자는 AI의 결과물이 여전히 "복잡하고 지저분한 실제 의료 현장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며 신중론을 편다. 몇 분 만에 오염을 찾아냈다는 화려한 시연과, 재앙적 피해를 보장할 수 없다는 벤지오의 경고 사이 어딘가에 진실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두 도시의 소식을 나란히 놓고 우리나라를 떠올리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규범을 짜는 국제 테이블에서도, 난치병에 AI를 던지는 최전선에서도 한국의 이름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남이 만든 규칙을 뒤늦게 받아들이고, 남이 개발한 도구를 사다 쓰는 자리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때다. AI를 어떻게 묶을지도, 그것으로 무엇을 구할지도 결국 남의 논의에 얹혀 가는 신세라면 곤란하다. 통제할 것인가, 구원할 것인가. 같은 주 두 도시가 던진 이 질문에 우리는 어느 쪽 테이블에도 앉지 못한 채 구경만 하고 있다가 떼를 놓치게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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