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만 원짜리 안경 하나가 대한민국에서는 순식간에 '잠재적 몰카'가 되었다. 지난 5월, 메타가 레이밴, 오클리와 손잡고 만든 AI 글래스가 국내에 상륙했다. 69만 원부터 시작하는 이 물건은 스마트글래스(smart glasses : 카메라와 AI가 달린 안경)로, 말만 하면 눈앞의 풍경을 찍고 통역하고 검색까지 해주는 미래형 웨어러블이다. 세계 스마트글래스 시장의 85.2%를 메타 혼자 쥐고 있을 만큼(옴디아, 2025년 기준) 이미 대세로 자리 잡은 기기인 것이다. 그런데 이 안경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자마자 붙은 이름은 '미래'가 아니라 '몰카'였다.
실제로 서울 강서경찰서는 한 남성을 무단 촬영 혐의로 수사 중이다. 그는 안경에 달린 촬영 표시등(LED)을 손으로 가린 채 데이트 상대를 몰래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고 한다. 사건 하나로 이 안경은 성범죄 도구의 상징이 되었고, 착용한 사람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 메타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표시등을 가리거나 훼손하면 카메라를 아예 꺼버리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내놓았고, 표시등 무력화 방법을 홍보하는 이들에게는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그럼에도 이동통신 3사까지 이 안경을 판매대에 올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론은 오히려 더 싸늘해졌다. 물론 오남용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는 정당하다. 같은 제품을 두고 미국에서는 "안경 쓴 사람 곁이 좀 불편하다"는 정도의 사회적 눈총에 그치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곧장 경찰이 움직이고 범죄로 직행하는 것이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을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안경 한 개에서 끝나지 않는다. 올해 1월 22일, 대한민국은 AI 기본법을 시행했다. EU가 법을 먼저 만들고도 단계적 시행으로 속도를 늦추는 사이, 규제를 통째로 전면 시행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인 것이다. 고영향 인공지능(사람의 생명, 신체,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AI)이나 생성형 AI로 서비스를 하려면 AI를 썼다는 사실과 판단 기준, 학습 데이터의 개요까지 미리 이용자에게 설명해야 하고, 이 고지 의무를 어기면 3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붙는다. 최소 1년의 계도기간이 있어 당장의 처벌은 미뤄져 있지만, 방향 자체가 '일단 채우고 보자'는 쪽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촘촘하게 AI에 족쇄를 채운 셈이다.
문제는 우리 실력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스탠퍼드대 HAI가 펴낸 'AI 인덱스 2026'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주목할 만한 AI 모델' 보유국에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고, 인구당 AI 특허 수는 아예 세계 1위다. 만들어 내는 능력은 세계 정상권인데, 정작 그것을 손에 쥔 국민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규제와 가장 날 선 낙인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같은 보고서에서 '규제보다 혁신을 우선한다'고 스스로 답한 비율은 우리나라가 세계 2위였다는 점이다. 말로는 혁신을 앞세우면서 정작 손은 규제 스위치 위에 얹어 두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이걸로 무엇을 만들까"보다 "이걸로 무슨 범죄가 벌어질까"를 먼저 묻는다. 그 질문을 곱씹는 사이 세계는 저만치 앞서 달려 나간다.
기술은 세계 3위, 특허는 세계 1위인 나라가 두려움과 규제에서만은 누구보다 앞서 있다. 이 앞선 자리가 자랑스러운 순위인지, 아니면 스스로 제 발목을 잡는 순위인지 한 번쯤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두려움은 언제나 가장 손쉬운 통제의 명분이지만, 그 명분으로 지켜낸 안전이 결국 남기는 것은 도태된 산업과 떠나는 인재뿐일지도 모른다. 이 규제 때문에 놓친 것이 이미 처음도 아닌데, 도대체 몇 개를 더 놓쳐야 바뀌게 될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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