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 깨지다

1x 의 Neo

 

로봇이 포도송이에서 포도 한 알을 따내는 십수 초짜리 영상 하나에 전 세계 로봇 업계가 뒤집어졌다. 지난 79, 오픈AI가 투자한 로봇 기업 1X 테크놀로지스는 가정용 휴머노이드 '네오(NEO)'의 새 손을 공개했다. 영상 속 네오는 한 손으로 포도송이를 받쳐 들고 다른 손의 손가락 끝으로 포도알 하나를 집어 줄기에서 떼어낸다. 껍질에 자국 하나 남지 않는다. 그리고 같은 손으로 9kg짜리 케틀벨을 번쩍 들어 올린다. 전구를 돌려 끼우고, USB-C 케이블을 꽂고, 수화까지 한다. 이 손은 지금 기술에 대한 경탄과 마케팅을 둘러싼 논란을 동시에 몰고 다니는 중인 것이다.

 

1X는 노르웨이에서 출발한 회사로, 2023년 오픈AI 스타트업 펀드가 투자를 주도하면서 단숨에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GPT를 만든 회사가 몸을 얹을 그릇으로 선택한 로봇이라는 뜻이다. 휴머노이드 업계에는 로봇 가치의 절반은 손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걷는 로봇은 이미 흔하지만 결국 일을 하는 것은 손이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조차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개발하며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손을 꼽았을 정도다.

 

공개된 스펙을 뜯어보면 이 손이 왜 주목을 받는지 알 수 있다. 네오의 손은 25 자유도(Degrees of Freedom : 관절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의 수)를 가졌다. 손가락과 손바닥에 22, 손목에 3개로 인간 손의 27 자유도에 거의 근접한 수치다. 구동 방식도 인간을 그대로 베꼈다. 텐던 드리븐(Tendon-driven : 힘줄 구동) 방식으로, 모터를 팔뚝 안에 숨기고 가느다란 힘줄 케이블로 손가락을 당긴다. 사람 손가락에 근육이 없고 팔뚝 근육이 힘줄로 손가락을 조종하는 것과 똑같은 구조다. 꼭두각시 인형을 줄로 움직이듯 무거운 모터를 손 밖으로 몰아냈기에 손 자체는 가볍고 빠르게 만들어진 것이다.

 

진짜 핵심은 기어 비율에 있다. 보통의 로봇 손은 작은 모터로 큰 힘을 내기 위해 100:1에서 200:1의 높은 감속비를 쓴다. 그런데 기어 비율이 높으면 힘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손끝이 물체에 닿아도 그 반발력이 기어에 막혀 모터까지 거슬러 오지 못하니, 로봇은 자기가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모른다. 기존 로봇 손이 계란을 쥐면 으깨버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1X는 이 감속비를 5:1에서 15:1까지 낮췄다. 낮은 기어비는 접촉의 힘을 모터까지 그대로 역류시키고, 덕분에 손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센서가 된다. 이른바 힘 투명성(Force Transparency : 접촉한 힘이 관절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어 로봇이 느낄 수 있는 성질)이다. 여기에 손끝의 고해상도 촉각 센서는 수직 압력과 접촉 위치는 물론 전단력(Shear Force : 표면을 스치듯 미는 방향의 힘)까지 측정한다. 물체가 미끄러지는 것을 눈이 아니라 손끝으로 느낀다는 뜻이다.

 

그 모든 스펙이 집약된 장면이 바로 포도 따기다. 당연히 인간의 시선에선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이해하면 굉장히 놀라운 퍼포먼스다. 포도송이에서 알 하나를 따는 일은 서로 다른 힘 제어 문제 여러 개를 동시에 푸는 작업이다. 한 손은 송이 전체를 받쳐야 하는데, 너무 세게 쥐면 아래쪽 알들이 터지고 너무 약하면 송이가 흘러내린다. 반대편 손가락 두세 개는 포도알 하나를 잡는다. 포도 껍질은 몇 뉴턴 수준의 힘에도 터지는데, 그보다 약하게 잡으면 알이 손끝에서 미끄러진다. 이 좁은 창을 유지하려면 전단력 센서로 미끄러짐을 실시간 감지해 악력을 미세하게 올려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알이 줄기에서 분리되는 찰나, 손가락이 버티고 있던 저항력이 갑자기 사라진다. 이때 잡는 힘을 밀리초 단위로 다시 계산하지 않으면 포도알은 손안에서 으깨진다. 게다가 이 두 손의 힘 조절은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동시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뤄진다. 한쪽 손가락이 알을 당기는 순간 반대편 손이 받치고 있는 송이에는 그만큼의 장력이 걸리고, 그 손은 변화를 감지해 지지하는 힘을 다시 맞춰야 한다. 수십 개의 관절이 저마다 다른 힘을 내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실시간으로 협주하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가 최대 45N, 포도알을 터뜨리고도 남는 힘을 내면서도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쓰도록 절제하는 것, 이것이 이 퍼포먼스 진짜 의미고 놀라워하는 이유다. 인간은 이 모든 계산을 무의식적으로 한다. 두 살배기 아기도 포도를 딴다. 그런데 체스 세계 챔피언을 꺾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컴퓨터에게 이 일이 이제야 가능해진 것이다. 컴퓨터에게 어려운 일은 인간에게 쉽고 인간에게 쉬운 일이 컴퓨터에게 가장 어렵다는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 드디어 정복되는 중인 것이다.

 

내구성 숫자들도 만만치 않다. 위치 정밀도 ±0.2mm, 손목 관절은 고하중 상태로 200만 사이클 내구 시험을 통과했고, IP68 등급 방수라 로봇이 제 손을 물로 씻는다. 1X는 올해 안에 이 손을 1만 개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CEO 베른트 뵈르니치는 "이 손은 휴머노이드를 진짜 쓸모 있게 만드는 데 집중한 집약적 엔지니어링의 정점"이라고 말했다.

 

논란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독점 취재를 한 IT매체 와이어드의 기자 분 애시워스가 기사에서 홍보 영상의 분위기를 지적한 것이다. 잔잔한 재즈가 깔린 은은한 조명 아래 로봇 손가락이 와인잔을 감싸고, 재킷 지퍼를 천천히 내리고, 포도를 어루만지는 장면들이 "관능적"이며, 인간 원격 조작자가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로봇을 파는 전략치고는 이상하다고 꼬집었다. 그러자 1X의 제품 총괄 다르 슬리퍼(Dar Sleeper)X에서 "배신감을 느꼈다""남은 기자 인생에 행운을 빈다"고 격분했고, 이 감정싸움이 기사보다 더 큰 화제가 되어버렸다.

 

또 다른 이슈로는 네오는 2만 달러(한화 약 2,800만 원)에 판매되지만 아직 완전 자율이 아니다. 어려운 집안일은 '전문가 모드'라는 이름 아래 VR 헤드셋을 쓴 인간 조작자가 원격으로 수행한다. 온보드 AI '레드우드'16천만 파라미터의 비전-언어 모델로 로봇 안에서 초당 5회 판단을 내리지만, 이 모델을 키우는 먹이가 바로 고객의 집안에서 수집되는 원격 조작 데이터인 것이다.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앞질렀고, 그 간극을 지금은 사람이 메우고 있다. 저 정교한 손끝의 감각과 시야가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현재 잘 알려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공업용 로봇에서는 현대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활약 중인 건 워낙 유명하니 다들 알고 있다. 그리고 가정용 로봇에서는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하며 휴머노이드 경쟁에 참전했다. 하지만 촉각 센서와 힘 제어처럼 로봇의 말초신경에 해당하는 기초 영역은 미국과 중국이 표준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데이터다. 원격 조작 데이터는 로봇 AI의 원유인데, 남의 집 안방을 촬영하고 조작 기록을 수집하는 이 사업 모델이 현행 개인정보보호 규제 아래의 한국에서 성립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다.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를 모을 자격에서부터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항상 말하지만 한국은 규제가 너무 빡빡한 나라다.

 

손재주는 인간이 기계 앞에서 지켜온 마지막 보루였고, 그 보루가 무너지면 공장과 주방과 병원의 풍경이 차례로 바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필을 쥐고 장문의 글을 써봤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먼 미래가 되겠지만 우리도 로봇에 정말 모든 걸 다 맡기게 되는 시점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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