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현실이 된 안구 임플란트

프랑스의 한 환자가 300쪽짜리 소설을 완독한 뒤 다 읽은 책을 장치를 만든 회사 앞으로 부쳤다. 이 사람은 불과 몇 년 전까지 마주 앉은 사람의 얼굴이 검은 얼룩으로 뭉개져 보이던 환자였다. 2026722, 미국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업 사이언스 코퍼레이션(Science Corporation)이 인공망막 '프리마(PRIMA)'로 유럽연합의 CE 마크를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인증기관은 독일의 데크라(DEKRA)이고, 유럽 30개국에서 판매가 가능해졌다. 글자와 숫자와 단어를 읽어내는 형태 시각(form vision : 사물의 윤곽과 문자를 구별해 내는 수준의 시각)을 되살려 정식 판매 허가를 받은 BCI(Brain-Computer Interface : 뇌와 기계를 직접 잇는 접속 기술) 장치는 프리마가 최초다.

문제는 이 소식을 옮긴 기사들이다. '실명 환자가 세상을 다시 봤다', '맹인이 눈을 떴다'는 제목이 줄줄이 붙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제목들은 사실이 아니다. 아래 숫자는 보도자료를 옮긴 것이 아닌 전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 원문과 임상시험 등록번호 NCT04676854의 선정 기준을 직접 열어 대조한 것이다. 이 칼럼을 읽는 여러분들 만큼에게는 팩트를 전달하고 싶어서 항상 논문을 뒤져보고 공식 발표 자료들을 정독했다.

노인성 황반변성은 시야에서 가장 또렷하게 보이는 망막 정중앙의 황반이 늙어 망가지는 병이다. 그중에서도 지도형 위축(Geographic Atrophy : 망막 세포가 지도 모양으로 넓게 죽어 없어지는 말기 건성 황반변성)은 지금까지 손쓸 방법이 없었다. 주변 시야는 멀쩡한데 정면만 검게 지워진다.

프리마의 해법은 공학적으로 영리하다. 눈 안에서 죽은 것은 빛을 전기로 바꾸는 광수용체 세포지, 신호를 뇌로 실어 나르는 신경절 세포가 아니다. 카메라만 고장 났고 케이블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망막 아래에 가로세로 2밀리미터짜리 광전지 칩을 깔아 넣는다. 환자는 카메라가 달린 안경을 쓰고, 안경은 그 영상을 근적외선으로 바꿔 망막 속 칩에 쏜다. 빛을 맞은 화소는 미세한 전기장을 만들고, 살아남은 신경세포가 그것을 받아 뇌로 올려보낸다. 배터리도 전선도 없다. 안경이 빛 하나로 전력과 데이터를 함께 던져주기 때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5개국 17개 기관에서 38명이 칩을 이식받았고, 12개월까지 추적된 32명 중 26(81%)에게서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시력 개선이 확인됐다. 평균 개선폭은 ETDRS 시력표 기준 25.5글자로 다섯 줄이 넘고, 84%는 글자와 숫자와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됐다. 여기까지는 기사가 흥분할 만하다.

그런데 같은 논문에 불편한 숫자도 실려 있다. 38명 중 19명에게서 안압 상승 등 중대 이상 반응이 26건 발생했다. 이 중 81%가 수술 후 2개월 안에 생겼고 그중 95%는 회복됐다. 중증은 4, 추적에서 빠진 6명 중 3명은 사망했다. 80대 고령 환자가 주 대상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이 팩트를 그대로 옮긴 기사는 거의 없었다.

찾아보니 대부분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조회수만 끌어 모으는 기사들만 있었다. 가장 크게 틀린 것은 대상 환자다. 조건은 명확하다. 60세 이상, 양쪽 눈에 지도형 위축, 수술 대상 눈의 최대 교정 시력 20/320 이하이면서 주변 시야가 살아 있는 환자가 대상이다. 앞이 전혀 안 보이는 사람은 애초에 이 수술을 받을 수 없다. 시신경이 손상됐거나 녹내장 말기, 당뇨망막병증으로 망막이 통째로 망가진 사람은 대상 자체가 아니다. 프리마가 되돌린 것은 시력이 아니라 시야 정중앙에 뚫린 7도짜리 창문 하나다. 기사 제목처럼 봉사를 눈 뜨게 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해상도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칩에 박힌 화소는 378, 화소 하나의 크기는 100마이크로미터다. 이 화소 크기가 낼 수 있는 해상도 한계가 대략 20/420이고, 실측된 인공 시력은 20/438에서 20/550 사이였다. 흔히 쓰는 법적 실명 기준이 20/200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되살아난 중심 시각조차 여전히 실명 범주 안에 있는 것이다. 색도 없다. 흑백이다.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20/42라는 숫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이 값은 안경의 최대 12배 디지털 확대와 대비 강화를 켠 상태에서 나온 값이다. 칩이 정밀해진 게 아니라 글자를 키워서 본 것이다. 돋보기를 대고 잰 값을 맨눈 시력이라 하지 않는다.

가장 정직한 숫자는 논문 안쪽에 있다. 일상생활의 시각 장애 정도를 재는 지표에서는 6개월과 12개월 시점 모두 측정 가능한 행동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글자를 읽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생활을 바꾸는 데까지는 아직 닿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름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장치는 BCI로 홍보되지만 뇌를 건드리지 않는다. 두개골도 열지 않고 피질에 전극도 꽂지 않는다. 눈 속에 칩을 넣는 망막 보철이다. BCI라는 단어가 투자와 기사 제목에 얼마나 유리한지 생각해 보면, 이 명명은 의학적 분류라기보다 마케팅에 가깝다.

프리마 자체가 회사와 함께 죽을 뻔한 물건이다. 프랑스의 픽시움 비전(Pixium Vision)20년 가까이 개발하다 돈이 떨어져 파산했고, 2024년 사이언스 코퍼레이션이 사들였다.

기술보다 무서운 건 회사가 망하는 일이다. 미국 세컨드 사이트(Second Sight)의 인공망막 아거스 II(Argus II)2010년대에 전 세계 350명이 넘는 환자에게 이식됐고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그런데 회사가 자금난으로 2019년 제품이 단종됫고, 합병 과정에서 환자 지원도 사라져 리도 부품도 없다. 환자들은 자기 눈 속의 장치가 언제 꺼질지 날짜를 세며 살게 된 것이다. 몸에 심은 의료기기가 회사의 재무제표에 인질로 잡힌 첫 사례다.

국내 황반변성 진료 인원은 2019년 약 20만 명에서 2023년 약 50만 명으로 2.5배가 됐다. 65세 이상 실명 원인 1위가 황반변성이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공급 쪽은 어떤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63'뇌 미래산업 국가 R&D 전략'을 발표했고, 7대 임무에 '감각 복원 임플란트'가 들어 있다. 방향은 맞지만 착수 시점이 2027년이다. 유럽 환자가 칩을 넣고 활자를 읽기 시작한 뒤에 우리는 기획서를 펴는 것이다. 프리마에 CE 마크가 붙는 순간, 앞으로 나올 모든 인공망막은 저 성능과 저 안전성 데이터를 기준선에 놓고 심사받게 된다. 기준을 만드는 쪽과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쪽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오해는 말자. 프리마는 진짜다. 20년 전 인공망막은 빛의 밝기나 겨우 느끼는 수준에서 사람이 활자를 읽는 데까지 왔다. 다만 흑백이고, 해상도는 실명 기준 아래이고, 몇 달의 훈련과 수십만 달러가 든다. 이 두 문장은 같이 붙어 있어야 한다. 하나만 떼어서 제목으로 뽑는 순간 그것은 뉴스가 아니라 광고가 된다.

기술 뉴스를 읽을 때 헤드라인이 아니라 등록 기준과 화소 크기를 확인해야 한다. 그 화소 크기가 다음 이야기의 전부다. 지금 100마이크로미터인 화소를 50마이크로미터 아래로 줄이면 인공 시력은 법적 실명 기준인 20/200 위로 올라선다. 회사도 더 촘촘한 칩과 더 가벼운 안경, 흑백이 아닌 회색조 시야를 다음 목표로 잡았다. 인간의 감각이 부품 단위로 교체되는 시대가 이렇게 열리고 있는 것이다. 시각이 첫 번째였을 뿐이고 청각과 촉각과 균형감각이 같은 경로를 따라온다. 그때 필요한 것은 감탄이 아니라 화소 크기를 직접 세어 보는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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