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원은 미로 끝에 숨어 있다

 

상담원은 미로 끝에 숨어 있다

 

급한 문제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사람 대신 상냥한 기계 목소리가 받는다. 안내를 한참 듣고 번호를 누르고, 상담원을 연결해 달라고 몇 번을 말해도 엉뚱한 대답만 돌아온다. 그렇게 한참을 씨름하다 결국 연결을 포기하고 전화를 끊는다. "날도 더운데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는 한 직장인의 하소연처럼, "꼭 상담사랑 통화해야 하는 순간에도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다들 경험해본 상당히 익숙한 이야기 아닌가?

 

기업들이 비용 절감과 업무 효율을 내세워 전화 상담의 첫 관문에 AI를 세우는 일이 빠르게 늘었다. 업계는 이를 AICC(인공지능 콜센터 : 사람 대신 AI가 전화를 먼저 받는 상담 시스템)라 부른다. 문제는 사람 상담원으로 가는 길이 미로처럼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은행과 카드사, 가전 렌탈업체 스물여섯 곳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상담원과 연결되기까지 짧게는 두 단계, 많게는 다섯 단계를 거쳐야 했고 시간은 3분가량 걸렸다. 연결 안내는 통화 맨 끝에 배치되고, 그 대기 시간의 통화료는 소비자 부담이다. 아예 전화 창구를 없앤 곳도 있다. 당근마켓은 채팅 문의만 받고, 네이버는 서비스마다 창구가 잘게 쪼개져 있어 전화 상담을 찾아내는 일 자체가 경험자의 기술이 됐다. 통로를 찾아내도 끝이 아니다. 5분을 기다렸더니 대기 고객이 많으니 다음에 걸어 달라더라는 성토, AI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자꾸 처음으로 되돌리더라는 성토, 버튼 하나 잘못 누르면 그 긴 안내를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한다는 성토가 꼬리를 문다. 고령층은 더 막막하다. 예순을 넘긴 한 이용자는 안내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 결국 자녀에게 부탁한다고 털어놨다.

 

이 불편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다. 상담원의 자리 자체가 AI로 대체되는 중이다. 한 시중은행 콜센터는 AI가 상담의 41.3%를 처리하면서 상담 인력이 1,133명에서 869명으로 264명 줄었다. 남은 상담원 한 사람이 하루에 받는 전화는 70통에서 많게는 120통으로 늘었다. 사람은 줄고 전화는 몰리니, 어렵게 연결 버튼을 찾아내도 기다림은 한세월이다. AI를 고강도로 도입한 콜센터의 상담원 평균 임금은 월 222만 원으로, 도입하지 않은 곳보다 14만 원 낮았다는 조사도 있다. 그리고 그 미로의 끝에서 상담원이 마주하는 고객은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상태다. 결국 그 화풀이는 애꿎은 상담원이 받아낸다. 회사는 인건비를 아꼈고, 고객은 시간을 잃었고, 남은 상담원은 감정을 갈아 넣는다.

 

정작 성적표는 초라하다. 조사기관 엠브레인이 성인 500명에게 물었더니 AI 상담에 만족한 사람은 21.6%뿐이었고, 73.6%는 AI가 요구사항을 알아듣지 못해 불편했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은 사람 상담원으로 연결되는 과정 자체가 불편했다고 했다. 한 인터넷은행 조사에서도 AI 챗봇 만족도는 36%로 사람 콜센터(72%)의 절반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웹 상담용 AI를 들인 뒤 사람 상담원이 처리하는 채팅 상담량이 최대 70% 줄었다고 밝혔다. 회사는 AI가 문의를 알아서 해결한 성과로 읽지만, 뒤집어 보면 사람에게 닿는 길이 그만큼 좁아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되돌아가는 회사들이 나온다. 스웨덴 금융사 클라르나는 AI가 상담 직원 700명분의 일을 해낸다고 자랑했다가 서비스 품질이 무너지자 이듬해 사람을 다시 앉히기로 했다. 맥도날드도 3년간 실험한 매장 AI 주문 시스템을 2024년에 접었다. 캐나다 항공사는 챗봇이 할인 정책을 잘못 안내해 소송 끝에 배상 판결까지 받았다.

 

이 소동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 있다. "AI로 해결될 문제였으면 애초에 전화도 안 했다." 사람들이 고객센터 번호를 누르는 이유는 단 하나, 앱과 검색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서다. 비용을 아끼려 세운 첫 관문이 고객과 상담원 모두를 화나게 만든다면, 대체 누구를 위한 자동화인가?

 

<출처>

https://kbthink.com/investment/deepdive/research/25101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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