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엔비디아 소식

왼쪽이 엔비디아의 새 기술을 켜기 전이고, 오른쪽이 켠 뒤다. 여기서 놀라야 할 대목은 화질이 아니다. 이건 미리 찍어둔 사진도, 공들여 녹화해 둔 영상도 아니다. 게이머가 지금 손으로 조종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중이고, 그렇게 매 순간 달라지는 화면을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수정해서 보이는 결과다.


그래픽카드가 없던 빛을 그려 넣는다


지난 9월 3일 밤, 엔비디아가 DLSS 5(딥러닝 슈퍼 샘플링 : 그래픽카드가 인공지능으로 게임 화면을 만들어 보태는 기술)를 공개했다. 첫 지원작은 농구 게임 ‘NBA 2K27’이다. DLSS 4가 저해상도 화면을 키워주는 단순 확대기에 가까웠다면, 5세대는 성격이 아예 달라졌다. 게임 엔진이 넘겨준 색과 움직임을 밑그림 삼아, 애초에 계산조차 되지 않은 조명과 질감을 AI가 스스로 그려 붙인다. 엔비디아 연구진은 이를 ‘3D 안내 신경 렌더링’이라 부른다. 지난 3월 젠슨 황이 이걸 처음 무대에 올리며 ‘그래픽의 GPT 순간’이라 불렀을 때는 RTX 5090 두 장을 꽂아 한 장은 게임을 돌리고 다른 한 장은 이 그림 그리는 일만 시켰는데, 반년 만에 카드 한 장으로 줄였다.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에 유출사고가 발생했는데, 지난 8월 말 미리 배포된 NBA 2K27 판본에 이 기술의 핵심 파일이 실수로 딸려 들어갔고, 게임 파일을 뜯어보던 사람들이 그걸 찾아냈다. 그리고 몇 시간 만에 다른 게임으로 번져나갔다. 오래된 게임에 신기술을 이식하는 것으로 이름난 퓨어다크라는 개조 제작자가 2011년에 나온 스카이림에 이 파일을 물렸고, 결과물이 인터넷에 쫙 퍼졌다. 15년 전에 만든 인물의 얼굴이 올해 나온 게임처럼 바뀌어 있었다. 낡은 질감이 되살아났다는 찬사와 만든 사람이 의도한 적 없는 얼굴로 바뀌어 버렸다는 비판이 팽팽히 맞섰다.


얼굴 논란은 3월 공개 때부터 있었다. 시연 영상에서 ‘레지던트 이블’ 주인공들의 얼굴이 성형이라도 한 듯 매끈해지자 게임 개발자들이 들고일어났다. 인디 게임 ‘더스크’를 만든 데이비드 시만스키는 “엔비디아, 대체 뭐 하는 거냐. 아무도 이걸 원하지 않는다”고 썼다. 젠슨 황의 답은 “그들이 완전히 틀렸다”였다. 그러고는 7월에 엔비디아가 개발자용 조절 장치를 붙였는데, 그중 하나가 얼굴만 이 기술에서 빼는 스위치였다.


공짜로 얻는 화질은 아니다. 해외 매체 테크파워업이 RTX 50 시리즈 전반을 측정한 결과, 이 기능을 켜는 순간 초당 프레임 수가 평균 50~60% 깎였다. 엔비디아는 최상위 모델인 RTX 5090의 프레임이 227에서 370으로 뛰었다고 자랑하지만, 뜯어보면 4K 화면을 4분의 1 크기로 줄여 그린 뒤 늘리고, 존재하지도 않던 화면을 여섯 배로 채워 넣은 숫자에 불과하다. 화질을 얻으려고 성능을 절반 내주고, 그 공백을 AI가 만들어낸 화면으로 메웠다. 게다가 이 기능은 RTX 50 시리즈에서만 돌아가고, 한 세대 전인 RTX 40 시리즈 지원은 올가을 이후로 미뤄졌다. 그래픽카드 한 장에 수백만 원을 쓴 사람만 볼 수 있는 화면이다. 이 등급의 부품값이 어떤지는 용산이나 온라인 견적을 한 번만 뽑아 보면 안다.


가정용 데이터센터 구축


그리고 같은 날 베를린의 가전 전시회 IFA에서 엔비디아는 정반대로 들리는 말도 했는데, 새 그래픽카드를 사지 말고, 집에 굴러다니는 컴퓨터를 전부 꺼내 쓰라는 것이다. 그러라고 내놓은 물건이 PAIR(퍼스널 AI 라우터 : 집 안의 컴퓨터 여러 대를 한 팀으로 묶어 인공지능 일감을 나눠주는 프로그램)라는 무료 소프트웨어다. 아이 방의 게임용 PC, 거실에 놓인 애플의 작은 데스크톱 맥 미니, 서랍에 처박힌 8년 전 그래픽카드까지 한 덩어리로 묶는다. 그렇게 묶인 컴퓨터들이 챗GPT처럼 묻고 답하는 인공지능을 인터넷 없이 집 안에서 돌린다. 내가 던진 질문이 어느 회사 서버로도 올라가지 않고, 매달 빠져나가던 사용료도 없다.


시연은 솔깃했다. 인공지능 비서 다섯에게 일을 한꺼번에 시켰더니 한 대로는 평균 18분이 걸리던 것이 세 대를 묶자 8분 48초로 줄었다. 다만 그 세 대가 서랍 속 옛날 카드가 아니라 엔비디아가 올가을 내놓을 신형 노트북, 전용 인공지능 컴퓨터, 그리고 최상위 RTX 5090이었다는 점은 슬쩍 넘어간다. 사실 이걸 왜 공짜로 뿌리는지도 감은 온다. 2018년에 나온 그래픽카드까지 다시 쓸모를 얻고, 심지어 애플 기기마저 엔비디아가 깔아놓은 판 위로 올려놓으려는 속셈이다. 게다가 같은 날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모델 파일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인 허깅페이스를 129억 달러에 사들였다. 집집마다 모델 파일을 내려받아 쓰라면서, 그 파일을 나눠주는 창고까지 손에 넣었다. 소프트웨어 한 벌과 인수 한 건으로 남의 집 거실이 엔비디아의 생태계로 편입됐다.


분석한 한계점


숫자를 차근차근 뜯어보면 또 실상은 드러나는데, 이 프로그램이 하는 일은 어느 컴퓨터가 켜져 있고 덜 바쁜지를 살펴서 일감 하나를 통째로 그쪽에 넘기는 교통 정리라고 보면 된다. 엔비디아 스스로 설명서에 못 박아 두었는데, 그래픽카드를 합치거나 메모리를 모으지도, 모델 하나를 여러 대에 쪼개지도 않는다. 은행 창구를 세 개로 늘려 줄이 짧아진 것이지, 창구 직원의 손이 빨라진 게 아니다. 혼자 대화창 하나 띄워놓고 묻고 답하는 사람에게는 세 대를 묶어도 답이 1초도 빨리 나오지 않는다. 앞의 8분 48초는 다섯 가지 일을 한꺼번에 던졌을 때 나온 숫자다. 그런 장면은 하루 종일 인공지능에게 코드를 짜게 하고 문서를 뒤지게 하는 사람의 책상에서나 생기지, 저녁에 검색 몇 번 하고 아이 숙제를 봐주는 집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손님이 한 명이면 나머지 두 창구는 불만 켜둔 채 서 있다.


묶이는 조건도 까다롭다. 일감을 받으려면 그 컴퓨터 안에 인공지능의 지식을 통째로 담은 모델 파일이 미리 들어 있어야 하고, 없는 컴퓨터는 후보에서 그냥 빠진다. 쓸 만한 모델 하나가 20기가바이트 안팎이니 세 대가 같은 일을 나눠 받게 하려면 같은 파일을 세 벌 깔아야 한다. 기본 저장장치가 256기가바이트인 맥 미니라면 모델 두어 개만 얹어도 자리가 빠듯하다. 엔비디아는 이 물건이 통신망을 거의 쓰지 않는다고 자랑하는데, 무거운 짐을 이미 각자의 집으로 옮겨둔 다음이라 그렇다. 베타 딱지가 붙은 물건답게, 출시 당일 두 대를 묶어본 해외 매체 XDA의 기자는 멀쩡히 연결된 컴퓨터가 ‘오프라인’으로 뜨고, 손으로 써넣은 설정 파일을 프로그램이 알아서 지워버리는 일을 겪었다. 국경 너머 컴퓨터를 원격으로 묶은 별난 실험이긴 했지만...


이제 남는 문제는 전기다. 일감을 받으려면 컴퓨터가 깨어 있어야 하고, 꺼진 컴퓨터는 목록에서 즉시 빠지므로 놀고 있어도 계속 켜둬야 한다. 그러다 일감이 몰리면 RTX 5090 한 장이 최대 575와트를 먹는다. 계산상 이 상태로 한 달 내내 돌리면 카드 한 장이 414킬로와트시, 4인 가구 한 달 평균인 280킬로와트시를 훌쩍 넘긴다. 한국의 주택용 요금은 이 지점에서 가혹해진다. 참고로 414킬로와트시를 사용하게 되면 월 5만 원 안팎이던 4인 가구 전기요금이 20만 원 가까이 된다.


엔비디아가 같은 날 내놓은 두 가지는 하는 일이 전혀 다른데 하는 말은 똑같다. 멀리 있는 남의 데이터센터에 맡기지 말고 네 기기에서 돌리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DLSS 5를 켜면 그래픽카드는 성능의 절반을 화질과 맞바꾸고, PAIR를 켜면 집은 모델 파일 여러 벌과 상시 대기 전력을 떠안는다. 어느 쪽도 새로 생긴 성능이 아니라 어디선가 끌어다 쓴 성능이다. 지금 이걸 집에 들여 이득을 볼 사람은, 이미 컴퓨터를 여러 대 켜놓고 사는 사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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