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는 초파리

앞차가 느리게 가면 옆으로 비켜 지나가고,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부딪히지 않게 방향을 잡는다.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그 운전대를 잡은 것이 초파리의 뇌를 본뜬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일 접시에서 손을 휘저어 쫓아내던 그 작은 벌레다. 대체 사람들은 초파리에게 무슨 일을 시키고 있는 걸까.

초파리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Fly Self Driving’이라는 공개 실험에서는 초파리 뇌의 연결 구조를 가져와 가상 도로에서 자동차 방향을 조절하도록 학습시켰다. 개발자의 자체 평가에 따르면 훈련에 쓰지 않은 도로 60개 중 58개를 완주했다. 길가에는 주차된 차가 있고, 맞은편에서는 다른 차가 다가온다. 앞서가는 느린 차를 지나가야 하는 상황도 등장한다. 좁은 골목에서 주차된 차를 피해 운전해본 사람이라면 어떤 일인지 금방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실제 도로에 차를 내보낸 실험은 아니다.

여기에는 조금 우스운 단서가 붙는다. 이 실험의 초파리는 아직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 자동차 방향을 조절하는 제한된 과제이기 때문이다. 운전면허 시험장에 데려갈 수준은 아니지만, 초파리 신경망의 구조를 이용해 길을 따라가도록 학습시켰다는 발상은 흥미롭다. 개발자는 모범 운전의 예를 따라 배우게 한 뒤, 직접 운전하다 실수하는 상황에서 다시 교정하는 방식을 썼다고 설명한다. 초보 운전자 옆에서 강사가 핸들 방향을 바로잡아주는 장면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아직은 독립적인 검증이 필요한 개발자의 공개 결과다.

어떻게 이런 실험이 가능해졌을까. 연구진이 초파리 머릿속 신경세포들의 연결을 배선도처럼 그려 공개했기 때문이다. 2024년에는 성체 암컷의 신경세포 약 14만 개를 담은 뇌지도가, 2026년 9월에는 수컷의 뇌와 신경삭까지 포함한 약 16만 6천 개 규모의 지도가 발표됐다. 이 지도를 바탕으로 컴퓨터에서 신호가 흐르게 만든 뒤, 그 반응을 자동차 조작에 연결한 셈이다. 살아 있는 초파리를 붙잡아 운전석에 앉힌 이야기는 아니다.

운전 말고 게임을 시킨 사람들도 있다. 한 개발자는 초파리 뇌의 연결망에 별도로 학습한 조작 장치를 붙여, 총싸움 게임 속 미로에서 출구를 찾게 했다. 다른 프로젝트는 게임에 연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생존 능력이 학습으로 좋아졌다는 사실은 입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것과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은 다르다. 뇌지도를 손에 넣었다고 원하는 능력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뇌 20개를 연결해도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필자도 초파리 뇌 시뮬레이션 20개를 병렬로 연결해 문장 학습을 시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하나로 부족하다면 여러 개를 묶으면 어떨까 하는 시도였지만, 적어도 이번 구성에서는 기대한 문장 학습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실패 하나로 초파리 구조를 이용한 모든 언어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계산기를 스무 대 나란히 놓는다고 번역기가 되지는 않는다. 처리할 수 있는 숫자는 늘어도, 단어의 순서와 문맥을 배우는 기능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초파리 뇌 모형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무엇을 입력하고, 앞선 정보를 어떻게 유지하며, 틀렸을 때 무엇을 바꿀지 설계해야 한다. 구조가 중요하다는 해석은 타당하지만, 실험 코드와 학습 기록을 분석하지 않고 실패 원인을 구조 하나로 확정하는 것은 지나친 단정이다.

실제로 ‘초파리 언어 모델’을 표방한 공개 프로젝트도 있다. 그런데 설명서를 읽으면 언어 능력은 이미 학습된 외부 언어 모델에서 온다고 분명히 밝힌다. 초파리 연결망은 그 모델의 출력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결합된다. 비유하자면 초파리 옆에 통역사를 앉혀놓은 셈이다. 말이 나왔다는 사실과 초파리에게 말을 가르쳤다는 주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렇다면 ‘생각은 못 하고 몸만 기억한다’고 설명하면 될까. 운전이 익숙해지면 핸들을 몇 도 돌릴지 매번 말로 계산하지 않는다. 상황에 맞춰 손발이 움직인다. 흔히 ‘몸이 기억한다’고 부르는 느낌을 떠올리면 감각과 행동을 연결한다는 설명에 가까워진다. 다만 초파리의 학습을 전부 반사행동으로 부를 수는 없다. 실제 초파리는 특정 냄새와 불쾌한 경험을 연결해 그 냄새를 피하도록 배우며, 간격을 두고 반복 훈련하면 며칠 지속되는 장기기억도 형성한다. ‘냄새를 맡고 피하는 법을 배운다’가 ‘문장을 이해한다’보다 가까운 설명이지만, 기억 자체가 없는 생물은 아니다.

컴퓨터 속 초파리는 살아 있는가

운전하는 모습보다 더 생물처럼 느껴지는 장면도 있다. Eon Systems가 공개한 가상 초파리는 먹이 쪽으로 움직이다가 몸에 가상의 먼지가 쌓이면 몸을 닦는다. 화면만 보면 작은 생물이 컴퓨터 안에서 생활하는 듯하다. 하지만 개발팀의 설명을 읽으면 걷기 등은 별도로 학습한 몸체 제어기의 도움을 받고, 뇌와 몸 사이의 연결에도 사람이 정한 규칙이 들어간다. 학습과 내부 상태도 상당 부분 빠져 있다. 살아 있던 초파리 한 마리를 기억까지 통째로 옮겼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생물의 뇌 구조에서 가져온 신호가 가상 몸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다시 감각으로 돌아오는 장면은 충분히 낯설다.

여기서부터는 실제 성과가 아니라 앞으로 해볼 만한 상상 실험이다. 학습 상태를 저장하고 복원할 수 있는 모형이 생긴다면 어떨까. 위험한 냄새를 피하도록 배운 디지털 초파리를 복사해 다른 컴퓨터에서 실행한다. 그 복사본도 같은 냄새를 피한다면, 우리는 경험의 흔적을 파일로 옮긴 셈이 된다. 반대로 배선도만 복사했더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지도에 담기지 않은 무엇을 더 저장해야 하는지 찾아야 한다. ‘뇌를 내려받는다’는 말에서 빠진 가장 재미있는 문제가 바로 여기다.

복사본을 두 개 만들면 실험은 더 기묘해진다. 처음에는 똑같은 상태로 출발하지만 하나에는 먹이를, 다른 하나에는 불쾌한 자극을 준다. 학습이 제대로 구현됐다면 둘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같은 뇌에서 시작한 두 존재는 언제부터 서로 다른 존재인가. 저장 시점으로 되돌리면 그동안 쌓인 경험은 사라진다. 문서라면 예전 파일을 다시 여는 일이지만, 만약 그 안에 경험하는 주체가 있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물론 현재 초파리 시뮬레이션에 그런 주체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바로 그 빈칸 때문에 이 가설은 기술을 넘어 철학으로 이어진다.

업로드된 나는 누구인가

우리가 단편적으로 엿본 것은 생물의 신경 구조를 데이터로 옮겨 일부 기능을 작동시킬 가능성이다. ‘의식을 데이터화해 업로드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앞서 살핀 연구와 시연은 행동과 회로의 일부를 다뤘을 뿐,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느끼는 주체가 존재하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간의 뇌를 옮긴다는 상상을 전보다 구체적으로 만들어준다. 무엇을 복사해야 기억이 남는지, 몸이 달라져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지, 행동이 같으면 같은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지 실제로 따져볼 질문이 생겼다.

만약 언젠가 인간의 기억과 성격까지 충실하게 재현할 수 있다면, 컴퓨터 속 누군가는 내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가족의 이름을 부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순간에도 화면 밖의 내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둘 다 어제 저녁을 먹은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하고, 둘 다 복사 버튼을 누르기 전의 삶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구분할까. 내 입장에서는 아무 데도 이동하지 않았는데 화면 안에서는 업로드에 성공했다고 기뻐하는 장면이다. 영원히 사는 대신, 죽음을 두려워하는 존재를 하나 더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과일 접시 위의 초파리에서 시작한 실험은 이렇게 우리 자신의 이름 앞에 도착한다. 인간의 의식 업로드가 현실이 된다고 가정할 때, 그곳에서 눈을 뜨고 자신을 나라고 부르는 존재를 우리는 누구라고 불러야 할까?

출처

학습 방법과 한계

https://github.com/suanmiao/fly-self-driving

뇌지도 연구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558-y

구글 발표

https://www.research.google/blog/a-connectomics-milestone-mapping-the-complete-male-fruit-fly-brain/

게임 실험

https://github.com/Aur1ety/DOOM-x-Fly

학습 실패 기록

https://github.com/nftechie/doomfly

프로젝트 설명

https://github.com/nftechie/flm

초파리 기억 연구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6-10306-z

Eon의 시연과 한계 설명

https://eon.systems/updates/embodied-brain-emulation

> comments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