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과 첫사랑을 다룬 대학생의 감상문에 갑자기 ‘오이시’가 등장했다. 일본어로 맛있다는 말이다. 음식 이야기도 아닌데 이 단어가 왜 들어갔을까. 과제를 낸 교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나눠준 안내문에 AI가 읽을 지시를 몰래 넣어뒀기 때문이다.
24일 뉴시스가 전한 국내 한 대학 교수의 이야기다. 교수는 답변에 ‘오이시데스’를 무작위로 넣으라는 문장을 흰색 글씨로 숨겼다. 흰 바탕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안내문 전체를 복사해 AI에 넣으면 그 문장까지 전달된다. 이후 학생들이 낸 과제에는 첫사랑을 이야기하다 ‘오이시’가 튀어나왔다. 익명 교수의 SNS 경험담을 전한 보도여서 학교의 공식 적발 결과와 같게 볼 수는 없다. 다만 공개된 제출물은 AI에게 과제를 맡긴 뒤 무엇을 확인했는지 되묻게 한다.
미국 알콘주립대 제이슨 깁슨 교수는 앞서 산업혁명 과제에 같은 함정을 심었다. 문맥에 맞지 않게 ‘마다가스카르’를 넣으라는 지시였다. 교수 설명에 따르면 학생 35명 중 32명의 답안에 그 단어가 등장했다. 답안을 한번 읽어보기만 해도 이상하다고 느낄 만한데, 그 검토마저 생략한 정황이다. 자기 이름으로 내는 글인데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제출했다는 이야기다.
시험에서는 그 피해가 다른 학생에게도 돌아간다. 지난 10월 19일 건국대의 한 교양과목 온라인 중간고사에서 AI 부정행위 의혹이 불거졌다. 실시간 화상 감독과 녹화까지 했지만, 커뮤니티에는 AI로 99점을 받았다는 자랑이 올라왔다. 점수는 작성자의 주장이다. 담당 교수는 시험 결과와 제보를 검토한 뒤 수강생 600여 명의 대면 재시험을 결정했다. 정직하게 시험을 치른 학생도 중간고사를 다시 치러야 한다. 남의 공부 시간을 빼앗는 일이다.
교실로 불러 모으면 해결될까. 지난 22일 보도된 정보처리기사 시험 사건에서는 20대 응시자가 AI 안경을 이용한 부정행위 혐의로 송치됐다. 감독관이 안경테의 카메라 렌즈와 표시등을 발견해 적발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올해 국가자격시험에서 적발된 스마트 안경 부정행위는 5건이다. 이달 연세대 수학 논술시험에서도 스마트 안경을 착용한 수험생이 적발됐다. 휴대전화를 걷고 화면을 살피던 감독관에게 안경테까지 확인할 일이 생겼다.
막으려는 교수들의 노력도 만만치 않다. 지난 16일 국정감사에서 방송통신대 총장은 교수들이 복사와 붙여넣기를 막는 시험용 브라우저를 쓰고, 제한 시간에 풀기 벅찬 문제를 내는 등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구술과 발표 녹화물을 활용하는 평가도 언급했다. 학생을 가르치고 문제를 내는 일에 더해, 누가 어떤 방법으로 감독을 피할지까지 연구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흰 글씨의 원리를 알면 숨은 지시를 지우거나 답안을 고쳐 낼 수 있다. 표식이 없다고 직접 썼다는 보장도 없다. AI 판독기의 점수만으로 부정행위를 확정할 수도 없다. 창이 바뀔 때마다 교수 개인이 새 방패를 마련하는 싸움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수백 명의 시험 영상을 돌려보고 제출물을 의심하는 데 시간을 쏟으면, 정작 학생의 질문을 듣고 설명해줄 시간부터 줄어든다.
부정행위를 엄정히 다루는 것과 평가 방식을 고치는 일은 함께 갈 수 있다. AI 사용을 허용하는 과제라면 어느 부분에 도움을 받았고 무엇을 직접 고쳤는지 묻고, 그 판단을 평가에 넣을 수 있다. 제출한 답안의 조건을 바꿔 다시 풀게 하거나 결론을 낸 이유를 설명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글을 잘 써주는 도구를 가졌다는 사실과 그 내용을 이해했다는 사실을 구별해서 성적에 반영하자는 이야기다.
자격증과 학점은 학생의 이름으로 남는다. 안경 속 AI도, 감상문을 써준 AI도 그 사람 대신 현장에서 책임져주지는 않는다. AI가 대신 써준 만점 답안 앞에서, 정작 학생에게 물어볼 질문은 사라진 것 아닐까?
<출처>
https://www.news1.kr/society/incident-accident/6330497
https://www.yna.co.kr/amp/view/AKR20261022174500004
https://mobile.newsis.com/view_amp.html?ar_id=NISX20261023_0003838252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61016001136
https://www.fnnews.com/news/202608280601134593
> comments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