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영상을 남기고 일감을 지운다

거래처는 영상을 계속 만들지만, 제작자에게 맡기던 일은 끊겼다. 회사 안에서 AI로 직접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상이 없어져서 일이 사라진 게 아니다. 사람에게 맡기지 않아도 영상이 나오는 방식으로 바뀐 셈이다.

존코바가 국내 영상업계 관계자 11명을 인터뷰한 영상에는 이런 변화가 담겨 있다. 기존 고객이 AI를 이용해 내부 제작으로 돌아섰다는 스튜디오 대표의 증언,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원과 예산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면 기획과 연출에 집중하는 업체는 영향이 덜하다고 답한다. 경기 침체도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영상업계의 불황 전체를 AI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실제로 끊긴 외주까지 미래의 가능성으로 취급할 이유는 없다.

국내 통계에서도 AI의 확산은 확인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9월 발간한 보고서에 정리된 콘텐츠 사업체의 생성형 AI 활용률은 2024년 13.2%에서 2025년 4분기 32.1%로 높아졌다. 발간 시점은 2026년이지만 수치는 2025년까지의 조사 결과다. 이를 일자리의 3분의 1이 대체됐다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된다. 활용률은 도입의 규모를 보여줄 뿐, 사라진 사람의 수를 세지 않는다.

대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는 국내 방송제작 조사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2025 방송제작 노동환경 실태조사'의 심층 조사에는 일부 재연 영상을 배우를 섭외해 촬영하는 대신 AI로 만든다는 증언이 나온다. 메인 작가가 보조 작가 없이 자료 조사 등을 처리하는 사례도 언급됐다. 다만 섭외와 출연자 관리 같은 업무는 남는다. 직업 전체의 소멸과 특정 일감의 대체는 구분해야 한다. 그렇다고 후자가 가벼운 일은 아니다. 재연 촬영 한 건이 AI 영상으로 바뀌면, 그 장면에 필요했던 배우와 촬영팀에게는 실제 일감이 사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가 사람보다 완벽한 영상을 만드는가가 아니다. 발주처가 그 결과물을 받아들일 만하다고 판단하는가다. 최고 수준의 작품을 만들지 못해도, 저렴하게 당장의 용도를 충족하면 외주를 대체할 수 있다. 제작자가 AI를 배우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말과, 그 제작자에게 돌아오던 일이 사라진다는 말은 동시에 성립한다.

사진업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확인됐다. 영국 사진가협회가 2026년 1월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8%가 생성형 AI 때문에 의뢰받던 일을 잃었다고 답했다. 전년도 조사와 같은 비율이다. 업계 전체의 실업률이나 한국 영상업계의 대체율은 아니지만, 창작 노동의 대체가 전망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근거다.

그렇다면 사람을 줄인 만큼 영상은 좋아졌을까. 국내 방송제작 조사에서 AI를 써본 652명 중 68.7%는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그러나 창작물의 품질이 좋아졌다는 응답은 44.5%였다. 51.4%는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쳐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품질이 향상되지 않았다는 답을 품질이 떨어졌다는 뜻으로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생산성의 향상이 곧 품질의 향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올해 5월 한국소통학회 세미나에서 발표된 전문 제작인 10명의 심층 인터뷰는 또 다른 문제를 짚었다. 제작자가 원하는 결과를 구현하기보다 AI가 내놓는 결과에 의도를 맞추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동료와의 협업이 줄면서 창작의 보람과 콘텐츠의 깊이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는 영상 전체의 품질 하락을 입증하는 통계는 아니다. 그러나 화면이 매끄러워지는 것과 이야기가 깊어지는 것이 별개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9월 콘진원 보고서 역시 AI 생성물을 그대로 쓰기보다 사람이 선택하고 수정하는 제작 방식을 확인했다. 영화에서는 편집과 합성, 색보정이 더해지고, 애니메이션에서는 장면마다 캐릭터의 얼굴과 형태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런 검토에 드는 시간과 인력까지 줄이면 완성도가 흔들릴 수 있다. AI의 능력만큼이나 발주처가 무엇을 생략하도록 요구하는지가 중요하다.

더 긴 문제는 다음 제작자가 어디에서 성장하느냐다. 자료 조사와 초안, 반복 편집은 신입이 제작의 기준을 익히던 일이기도 하다. 올해 8월 국제 디자인, 광고 단체 D&AD가 내놓은 보고서도 입문 단계 일자리의 소멸이 미래 창작자의 판단력을 기를 기회를 없앨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숙련자는 AI로 작업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신입에게는 숙련자가 될 과정 자체를 막는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AI가 만든 장면을 고르고 고치는 능력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능력을 쌓을 일부터 사라진다면, 업계는 당장의 제작비를 줄이는 대신 다음 세대의 제작자를 잃는다. 영상의 완성도는 사람을 지운 만큼 저절로 높아지지 않는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tRsuIO8V55U

https://www.kocca.kr/kocca/bbs/view/B0000141/2012494.do?menuNo=204145

https://welcon.kocca.kr/ko/info/report/1956871

https://www.the-aop.org/uploads/aop-member-survey-copyright-ai-january-2026.pdf

https://global.ebs.co.kr/board/bbs?boardId=31&boardTypeId=1&cmd=view&postId=30005166970

https://www.dandad.org/insights/learning/ai-report-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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